우리 사회의 특징은 다양성에 있다. 비록 상대방의 의견이 자신의 것과 다르더라도 그것을 경청하고 대화와 토론을 통해 접점을 찾아나가는 것이 다양성의 장점이다. 이점에서 남북정상회담 이후 정부당국이 일부 탈북자들의 인터뷰와 강연을 제한하고, 불가피하게 그렇게 해야 할 때는 정부의 포용정책을 옹호하라고 종용했다는 보도는 우리 사회가 ‘다양성의 위기’를 맞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우려를 갖게 한다.

탈북자들은 말할 필요도 없이 ‘자유’와 ‘다양성’으로 대표되는 우리 체제가 좋아서 온갖 역경을 무릅쓰고 이쪽으로 넘어온 사람들이다. 그런 사람들에 대해 당국이 최근 남북간에 화해분위기가 조성되고 있다고 해서 “언론의 인터뷰 요청을 가능한 한 사절하라” “북한의 나쁜 것은 가능한 한 말하지 마라” “정상회담 결과에 대해 물으면 잘됐다는 식으로 답변하라”고 통제한다면 그들의 목숨을 건 탈북이 도대체 어떻게 정당화될 수 있는 것일까.

말로도 모자라 탈북자 동지회가 발간하는 ‘민족통일’ 6월호와 7월호의 일부내용을 삭제하거나 대담자(대담자)의 이름을 익명으로 처리한 것은 어떤 이유로도 설명될 수 없다. 특히 6월호에 실린 최근 북한 실상을 자세히 전하는 김덕홍 전 노동당 중앙위원회 자료연구실 부실장의 ‘북한자료집’을 전문 삭제한 것은 표현의 자유를 훼손한 것이다. 또 7월호에는 황장엽씨와 김덕홍씨의 정상회담 관련 대담이 실렸으나 정작 대담자 이름은 삭제됐다.

물론 탈북자들은 북한체제를 버리고 나왔다는 점에서 그들의 북한비판은 심정적으로 남달리 더 엄격할 수 있다. “북한은 변한 것이 없는데 우리만이 (북한을) 변했다고 한다” “남한정부의 방침이 북한의 실상을 오도할 우려가 있다”는 일부 탈북자의 시각은 현정부의 대북정책과 초점이 맞지 않을지 모른다. 그러나 그들의 ‘언로(언로)’ 자체를 정부가 앞장서서 막는 것은 민주국가의 헌법정신에 어긋나는 일이다. 최근 김영삼 전 대통령이 황장엽씨 면담을 요청했는데 황씨 자신은 그런 사실을 모르고 있었다고 한 대목에서도 황씨의 입을 통한 어떤 발언도 통제하려는 당국의 기도가 아닌가 하는 우려를 떨칠 수 없다.

근래에 탈북자들의 견해뿐 아니라 ‘남· 북’과 관련한 모든 ‘다른 의견’들을 ‘반통일적’으로 몰아붙이는 경향이 대두되고 있는 것은 심히 걱정스런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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