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덧 6·25 참극 반세기가 넘었습니다. 앞으로 백주년이 될 때는 체험세대가 없으니 6·25 전쟁도 멀리 임진란이나 삼국시대 전쟁처럼 과거사로 잊혀지겠지요. 50년 만에 수십만이 묻혀있는 국립묘지에서 진혼굿이라도 올리는 것이 오늘의 산자들이 해야 할 마땅한 도리라고 믿습니다. ” 가곡 ‘비목(비목)’의 작사자 한명희(한명희)씨가 호국영령 진혼예술제를 준비하며 보낸 편지의 한토막이다. ▶27일은 휴전 47주년이 된 날이었다. 북한다운 발상이지만 그들은 이날을 ‘전승’ 기념일로 친다. 남북의 화해무드 속에 ‘6·25전쟁 50주년’도 조용히 되새긴 터에 정전일을 기념한다는 것은 생각조차 힘들었다. 그런데 어제 오후 7시27분에 동작동 국립 현충원에서 진도 씻김굿을 현대적으로 변용한 대규모 진혼제가 열렸다. 분향, 초혼(초혼), 진혼무(진혼무), 헌시(헌시)가 이어진 굿판에서 참석자들은 꽃다운 나이에 산화(산화)한 영령들의 넋을 새삼 떠올렸다. ▶우리는 과거를 쉽게 잊는 경망한 세태 속에서 6·25라는 엄청난 역사적 비극도 기억에 묻고 허겁지겁 살아왔다. 하물며 이만큼이라도 사는 것이 나라위해 목숨바친 분들의 덕이라며 진정 감사할 겨를이 있을 리 없었다. 이런 시점에서 이들을 위한 진혼과 위무(위무)가 마땅히 해야 할 ‘국민된 도리’라고 뜻을 모은 문화예술계 24인과 ‘비목마을 사람들’이 이런 행사를 마련한 것이다. ▶‘초연이 쓸고 간 깊은 계곡 양지녘에 비바람 긴 세월로 이름모를 비목이여…. ’ 노랫말처럼 이름모를 묘비 앞에서 이제서야 진혼제가 열렸다. 미국은 포스터까지 만들어 전후(전후) 세대에게 한국전의 교훈을 가르치고 다채로운 기념행사를 3년 동안 연다는데, 우리는 ‘아! 6·25 특별전’(전쟁기념관)이 그나마 전쟁을 상기시켜 주는 마당에 이번 행사가 갖는 상징성은 참으로 크다. ▶영화 ‘라이언 일병’에서 보듯 미국인들은 군인과 보훈을 통해 애국심을 고취한다. 6·25전쟁에서 전사한 유해(유해) 한 구라도 찾기 위해 집요하게 협상한다. 그런데 우리는 남북화해를 외치면서 “국군포로는 없다”는 말이 지도층 입에서 나온다. 그런 마당에 그동안 거들떠보지 않던 무명용사들을 위한 제사란 얼마나 아름답고 눈물겨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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