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정인
/연세대 교수·정치학

노무현 대통령의 역사적 방미가 목전에 와 있다. 이번 노무현·부시 정상회담에 거는 국민적 관심과 기대는 2000년 남북 정상회담에 견줄 수 있을 만큼 매우 크다. 어떤 이는 이번 정상회담을 한국의 명운을 담보하는 사활적 이벤트라고 규정하고 있는가 하면, 골드만삭스라는 세계적인 투자회사는 대한국 투자 여부를 이번 정상회담의 결과를 보면서 결정하라고 고객들에게 조언해 주고 있다.

그만큼 이번 정상회담은 중차대하다. 파국으로 치닫고 있는 북한 핵 문제의 평화적 해결, 한때 삐걱이던 한·미동맹의 재결속, 그리고 그에 따른 한국 경제에 대한 국제적 신인도 개선 등 한국의 미래를 가늠하는 주요 현안의 향배가 이번 정상회담을 통해 좌우될 수 있기 때문에 더욱 그렇다.

그러나 노 대통령을 맞는 워싱턴의 정치 기류는 심상치 않다. 무엇보다 북한의 벼랑 끝 전술이 이번 정상회담에 매우 부정적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북측이 베이징 3자회담에서 핵 무기 보유는 물론, 폐 연료봉의 재처리까지도 시인하면서 워싱턴에서는 북핵 문제 해결에 대한 비관적 시각이 크게 대두되고 있다.

이젠 보수 강경 세력뿐만 아니라 북한과의 대화와 협상을 강조하던 온건파까지도 등을 돌리는 형국이다. 이러한 난기류 하의 워싱턴에서 북핵문제의 평화적 해결을 설파해야 하는 노 대통령의 입장에는 어려움이 따를 수밖에 없다.

이라크전의 조기 종료도 불리한 변수로 작용하고 있다. 이라크에서의 미국의 승전은 신보수주의자들의 입지를 더욱 강화시키고 있다. 도덕적 절대주의, 패권적 일방주의, 그리고 예방적 선제 공격론으로 무장된 이들이 북한을 보는 시각은 사뭇 걱정스럽다.

이들은 북한을 고립시키고, 봉쇄하여 기존 체제를 붕괴시켜야만 대량 살상무기 문제가 해소될 수 있다고 믿는다. 한반도 평화구축이라는 국민적 소명을 가지고 방미하는 노 대통령에게 이들의 득세는 큰 짐이 될 것이다.

또한 우리의 반미정서에 대한 미국측 반감도 크게 부담이 된다. 상당한 국내 정치적 반대에도 불구하고 미국의 이라크전 지지와 한국군의 이라크 파병이라는 결단을 내린 노 대통령의 이미지가 미국 내에서 크게 향상된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아직도 보수층의 여론 주도세력은 과거의 왜곡된 선입견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워싱턴의 이러한 난기류를 감안할 때, 이번 정상회담에서 북핵 문제, 한·미동맹 등 현안에 대한 획기적 돌파구를 마련하기는 쉽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노 대통령이 항상 최악의 상황에서 최선의 결과를 도출해내는 탁월한 지도력과 승부수를 가진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한·미관계의 구조적 경직성을 극복하면서 부시 대통령으로부터 파격적 양보를 받아내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따라서 이번 정상회담을 한판 승부의 현안타결형 회담으로 인식해서는 안 될 것이다. 첫 대면에서, 그것도 30분 동안의 정상회담과 2시간 남짓한 만찬에서 큰 타결을 기대할 수는 없다. 짧은 시간이지만 진솔한 의견 교환을 통해 서로 신뢰를 구축하고, 북핵 문제의 평화적 해결과 한·미동맹의 결속이라는 기본원칙을 다지는 공동선언만 채택해도 큰 성공이라 할 수 있다.

이를 위해서는 외교적 가식에서 벗어나 국내 정치적 변화에 따른 서로의 입장차를 솔직히 토로하고, 공동으로 추구해야 할 가치, 원칙, 그리고 전략을 재확인할 필요가 있다.

거듭 강조하거니와 이번 노 대통령의 방미는 매우 중요하다. 그러나 과도한 기대는 금물이다. 오히려 과도한 기대보다는 이번 방미를 전 국민적 차원에서 전폭적으로 지지해 주어야 할 것이다. 북한 핵 문제의 평화적 해결, 전쟁의 예방, 그리고 한·미동맹의 결속이라는 방미 목적을 달성하는 데 여야, 보혁(保革), 노소의 구분이 있을 수 없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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