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공기 게양 사법처리 방침이 국내 TV에 보도되자 이를 본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김대중 대통령에게 ‘이럴 수 있느냐’며 돌아가달라고 했다”는 황원탁 대통령 외교안보수석의 발언(황 수석은 나중에 ‘돌아가달라’는 부분은 사실과 다르다고 수정했다)은 몇가지 점에서 분명한 정리가 필요하다.

우선 우리 측 수행원들이 달고 있던 태극 배지와 남한 대학 내 인공기가 동격으로 상쇄될 수 있느냐는 문제가 있다. 북한 측도 ‘김정일 배지’를 달고 있었다는 점을 상기시키면서 남측은 추후 김 위원장이나 북측 대표단이 방한할 때 그들이 북한을 대표하는 어떤 표지를 지녔더라도 그것을 시비할 이유가 없다. 그들의 방한 기간 중 북쪽 어느 곳에 태극기가 내걸렸다고 가정할 때 북한 당국이 그것을 방치할 리도 없고 그들이 그것을 어떻게 처벌해도 남한은 관여할 위치에 있지 않다는 것 역시 자명한 일이다. 그것은 어디까지나 남·북한의 법질서라는 내정(내정)에 관한 문제이기 때문이다.

많은 한국사람들은 김정일 위원장이 김 대통령에게 ‘귀환해달라’고 했다는 발언에서 어떤 모멸감을 느꼈을 것이다. 청와대 공보수석은 그 대목은 인공기게양 사건과 관련이 없고 공동선언 작성과정에서 마찰이 있어 그 때 나온 말이라고 해명했다. 어떤 문제로 그런 말을 했느냐는 것은 그리 중요하지 않다. 어떤 불만과 이견이 있더라도 자신의 초청으로 방문한 남한의 대통령에게 ‘그만하고 내일 돌아가달라’고 했다는 것은 예의의 문제이다. 그것은 국제관계에 전례가 없을 뿐 아니라 남쪽 국민들을 전혀 배려하지 않은 언사이다.

우리는 또 왜 이런 전언(전언)이 이제서 나오며 어째서 청와대 내에 혼선과 혼동이 생기는가 하는 데에 큰 우려를 갖는다. 혹자는 당국자가 인공기 얘기를 꺼냄으로써 앞으로 인공기 게양의 사법처리 문제에 어떤 시사점을 던져두려고 한 것으로 생각할 수 있다. 실제로 국내 대학에서 인공기가 버젓이 게양되고 있어도, 또 어느 사람이 인공기를 차에 달고 ‘김정일’ 행세를 해도 방관되거나 훈방되는 상황이다. 그런 점에서 북은 이미 남쪽의 어느 부분 법질서에 영향을 미치고 있는 셈이다. 게다가 한 수석은 말을 했다가 황급히 주워담고 다른 수석은 ‘혼동’을 내세워 그것을 부인하는 등의 상황은 우리 청와대가 남북문제와 같은 중차대한 사안을 과연 효율적으로 이끌어 갈 수 있느냐는 포괄적인 의문을 갖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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