尹平重
한신대 교수·철학

한나라당이 극구 반대했을 뿐 아니라 국회 정보위가 「부적합하다」는 의견을 낸 서동만 국정원 기조실장 임명을 둘러싼 논란은 우리 사회 공론장의 취약성과 천박함을 극명히 보여 준다.

원론적으로 말하자면 인사청문회 취지에 비추어 볼 때 노무현 대통령이 국회 의견을 존중하는 것이 더 바람직했다. 그러나 기조실장 임명이 청문회 심의 대상도 아니며, 대통령의 인사권에 속한다는 것도 맞는 이야기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서동만 실장 임명에 반대하는 쪽의 어법이다. 교수 시절 서동만 실장의 발언에서 심각한 이념적 문제점이 발견된다는 것이다. 거기에 과거 이력까지 더해 「친북 좌익인사」로 규탄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종합적으로 판단해 볼 때, 서 실장은 햇볕 정책이 상징하는 한반도 평화·화해 노선에 충실한 인물인 것처럼 생각된다. 물론 작금의 북핵 위기가 보여주듯 햇볕정책 자체에 대해서도 근본적인 의문이 제기될 수는 있다.

그러나 햇볕정책에 대한 비판과 함께, 북한 전문가로서 합리적인 입장을 견지해 온 서 실장의 자격에 대한 질문도, 공론장의 이성적 규칙을 차분히 따르는 것이어야 한다.

분단체제 아래서 누가 친북적이라 불린다면, 그것은 곧 「빨갱이」와 동의어를 뜻하는 것일 수밖에 없었다. 그 이름 자체가 척결의 대상이었고, 사회적 죽음에의 초대장이었다.

따라서 한반도 문제에 대해 탄력적 입장을 편다는 이유로 능력 있는 한 북한 전문가를 「친북인사」라고 부르는 것은 명백한 「인격살인」이며 냉전적 색깔 공세의 소산이 아닐 수 없다. 오히려 논의의 초점은 그가 그런 요직을 맡을 객관적 자격이 있느냐의 공론적 심의로 옮겨져야 하는 것이다.

다른 예지만, 몇몇 보수신문들에 대해 「조폭신문」이라 부르는 것도 우리 공론장의 선동성과 천박함을 드러내는 경우다. 사주 일가가 경영권을 장악해 세습하고 있는 언론사는 과연 족벌언론임에 분명하다.

또한 친일과 군사독재와의 유착이라는 잔재와 그리고 지금도 가끔 왜곡보도의 의혹으로부터 자유롭지 않은 언론사들이 있는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이들 언론을 함께 싸잡아, 자기 조직의 이권을 위해 칼과 도끼를 마구 휘둘러 인명을 살상하는 조직범죄집단으로 부르는 것은 말의 오용이자 왜곡이 아닐 수 없다.

조폭은 백해무익한 사회악이며, 뿌리 뽑아야 할 공적(公敵)이다. 그 안에서는 음모와 배신, 그리고 철저한 힘의 논리에 기초한 살육행위만이 판친다. 따라서 우리는 조폭의 횡포에 치를 떨며 조폭 없는 사회를 꿈꾼다.

그런데 이른바 ‘조폭신문’ 내에서는 사주(社主)의 일방적 지시에 의해 기자들이 과연 똘마니처럼 필봉을 흉기 삼아 휘두르는 것일까? 역사적 공과가 복합적으로 섞여 있고, 많은 문제도 안고 있지만 동시에 사회적 공기(公器)이기도 한 언론이 어떻게 조폭이라 불릴 수 있는 것일까?

물론 「조폭신문」이라는 용어를 만들고 쓰는 이들은 이것이 언론개혁을 위한 비유법이라 말할지 모른다.

그러나 이 말 자체의 선동성과 일면성은 「조폭신문」이라 불리는 언론이 우리 사회 발전과정에서 갖는 복합적 성격에 대한 이해를 성급히 차단한다. 언론개혁은 과연 시급하며 중요한 과업이다. 그러나 난폭한 딱지 붙이기식 구호에 의한 편가르기는 이성적 언론개혁을 오히려 어렵게 할 뿐이다.

말이 정확하게 쓰이고, 객관적이고 입체적인 담론이 사용될 때 공론장이 비로소 성숙해진다. 성숙한 공론장의 존재는 민주주의의 필수 요건이다. 어떤 이유로든 이런 공론장의 원칙이 침해될 때 우리의 인식은 천박해지며, 삶은 민주주의로부터 멀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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