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너드 스펙터
/몬테레이 비확산연구소 워싱턴 소장, 전 미국 에너지부 군비통제·비확산 차관보

후세인의 대량살상무기를 제거하기 위한 이라크 전쟁은 핵무기를 개발하려는 북한에도 적용될 수 있는 많은 교훈을 제공하게 될 것이다.

지난달 베이징에서 열린 미·중·북 3자회담에서 북한 대표는 미국의 켈리 차관보에게, 북한이 실제로 핵무기를 갖고 있다고 직설적으로 선언, 북한이 핵무기를 갖고 있을 것이라는 미국의 가정(假定)을 더욱 확신시켰다.

북한은 또 폐(廢) 핵연료봉에서 추가로 핵무기 물질을 추출했다고 말함으로써 그들이 곧 5~6개의 핵폭탄을 가질 수도 있게 될 것임을 암시했다.

하지만 이라크 전쟁은 대량살상무기가 알려진 것처럼 성능을 발휘하지는 못할 수도 있음을 보여주었다. 전후(戰後) 전범 처리 위협 때문에 후세인 군대가 생화학 무기를 사용하지 못했든, 아니면 미군의 작전이 워낙 치열해 사용할 겨를이 없었든, 생물·화학무기는 실제로 사용되지 않았다.

이 때문에 만일 미·북 대결 국면이 벌어질 경우 북한의 핵무기 억지력이 효과를 발휘할 것이냐 하는 의문이 제기된다.

하지만 이라크 전쟁의 핵심적 교훈은 전쟁으로 이어지게 한 상황이다. 즉 무장해제했다는 이라크의 주장을 미국은 받아들이지 않았다.

이라크 정부의 주장을 검증하기 위한 국제 사찰이 활발히 진행되고 있는 상황에도 부시 행정부는 이라크의 주장을 일축했다. 이라크가 진실로 무장을 해제했다면 사찰에 적극 협력해야 하는데, 이라크가 협력하기는커녕 사찰을 방해했다고 미국 관리들은 주장했다.

그러면서 부시 행정부는 이라크를 무장 해제할 유일하게 효과적인 길은 ‘정권 교체’라는 결론을 내렸다. 처음 유엔 사찰이 시작됐을 때 미국은 만약 후세인 정권이 완전히 바뀌었다고 할 만큼 이라크가 사찰에 전폭적으로 협력하는 ‘정권 내부적 변화’를 보인다면, 그것을 수용하려고 했었다.

하지만 후세인은 그 같은 마지막 기회를 받아들이지 않았고, 미국은 결국 이라크를 무장해제시킬 유일한 길은 힘으로 그를 제거하는 것뿐이라는 결론에 도달했다.

김정일에 대해 깊은 불신을 갖고 있는 부시 행정부가 북한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의 논리를 적용하는 쪽으로 가게 되리라는 점은 의문의 여지가 없다.

가령 미국이 이라크에서 했던 것보다 더욱 광범위한 사찰을 북한에서 벌이더라도, 북한이 ‘적극적인’ 협력을 한다는 명백한 증거가 없다면 안심하지 못할 것이다.

지금의 상황에서 북한이 그런 협력은 생각할 수 없는 것처럼 보인다. 북한이 1994년의 제네바 합의를 위반해 비밀리에 우라늄 농축 프로그램을 시작했고, 플루토늄 생산 활동의 동결을 감시해온 국제 사찰요원들을 축출한 점을 볼 때 그렇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국과 북한은 대타협을 위해 어느 정도 비슷한 제안들을 테이블 위에 내놓은 것으로 보인다. 대타협이란 북한이 핵무장 해제를 받아들이고 민감한 무기수출을 그만두는 한편, 미국과 일본·한국 및 다른 선진국들은 북한에 상당한 경제원조와 정치적 포용을 제공하는 것이다. 이것은 북한 정권 내부의 변화가 아직도 가능할 수 있음을 뜻한다.

실제로 작년 10월에 핵 위기가 시작되기 전까지만 해도 북한이 다른 분야에서는 심대한 변화를 보인다는 증거가 있었다. 가령 북한은 해외에서 테러리즘 지원을 중단해 온 것 같다.

북한은 일본인 납치를 시인했으며, 그들의 고향 방문을 허용했다. 또 북한은 남한과의 거래 관계를 상당히 개방했으며, 비무장 지대를 통과하는 철도 연결 사업도 거기 포함된다.

개혁과 변화를 향한 이 같은 추세는 지난 10월 이후 대결적인 행동에 자리를 내주었지만, 언제든 되살아날 수도 있다. 북한이 작금의 위기를 평화적으로 해결하려 한다면 그 길로 꾸준하게, 확실한 믿음을 줄 수 있도록 나아가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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