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북화해를 상징하고 평화를 추구하는 노력이 우리 교과서에 실리는 것은 당연하다. 때문에 그 자리에는 10년 전의 남북적십자회담 사진이 들어있었다. 그런데 이번에 그 자리에 남북정상회담 사진을 전격 교체한 것이다. 교육부가 회담이 끝난 지 1개월도 채 안된 시점에서 전광석화(전광석화)처럼 교과서를 개정하여 77만권의 인쇄를 끝내고 전국에 배포까지 마쳤다니 우선 그 신속함에 놀라울 따름이다.
교과서 개정은 오자(오자)나 지명 표기 등 오류가 있거나 시대상황의 변화에 따라 바꿀 필요가 있을 때 교육부와 한국교육과정평가원의 협의를 거쳐 보완할 수 있게 되어 있다. 그러나 중요한 사안이나 논란이 예상되는 내용은 공청회를 열어 국민들의 의견을 수렴한 다음에 개정해왔다. 그런데 이번에는 남북정상회담 전에 이미 어떤 성과에 대해 의견을 나눴고 회담이 성사되자 교육부가 촌음을 아끼듯 재빠르게 개정했다. 교육과정평가원의 연구진회의에서도 이견(이견)이 있었으나 무시되었고, 교수·교사로 구성된 개정심의회의는 지난 4월 이후 한번도 열리지 않았다고 한다.
교과서의 편찬이나 개정은 신중에 신중을 기해야 한다. 그렇지 않은 경우 사후 논란을 야기하고 교육에도 심대한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비근한 사례가 현대사 용어의 개정이었다. ‘4·19’ ‘5·16’ ‘12·12’ 등 우리 현대사의 주요한 사안들이 재평가를 받으면서 93년부터 2년여의 논란과 공청회를 거쳐 95년 2월 확정되었고 96년도 교과서부터 반영됐다. 4·19는 4월혁명, 5·16은 5·16군사정변, 12·12는 12·12사태로 정리된 것이다.
설령 이번 남북정상회담은 대단히 중요한 사안이라 다음 대(대)를 기다릴 여유가 없어 즉각 반영한다고 해도 학년 중간에, 그것도 남북선언의 성과가 가시화되기도 전에 법석을 떠는 것은 야당의 주장처럼 정권홍보의 인상을 줄 우려가 다분하며 집권 측의 과잉 충성의 결과일 뿐 아니라 역사와 교육을 길게 볼 줄 모르는 단견의 소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