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북문제와 관련해 청와대나 정부 당국자들은 말을 아꼈으면 한다. 정상회담 이후 지금까지 한달여 동안 고위 당국자들의 ‘입’으로 인해 빚어진 갖가지 크고 작은 평지풍파(평지풍파)와 그에 따른 사회적 혼선은 애초부터 있어서는 안 될 일이었다. 권력측이 조금만 더 신중하고 사려깊게 대처해왔다면 “북한이 남한 차기정권의 대북정책 일관성을 걱정한다더라”는 대통령의 엊그제 발언을 둘러싼 최근의 논란 같은 것도 그렇게 크게 부각되지 않았을 것이다.

문제의 이 발언은 청와대 관계자의 주장처럼 ‘대통령은 차기정권을 누가 맡을지에 대해 얘기한 것이 아니라, 북한이 우려하고 있는 반응을 순수하게 전한 것일 뿐’으로 볼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사실이 그렇더라도 현직 대통령이 차기정권이나 대선과 관련해 정치권에 민감한 파장을 일으킬 수 있는 발언을, 그것도 굳이 다른 나라 외무장관에게 말할 필요가 있었겠느냐를 되짚어보지 않을 수 없다. 더군다나 ‘북풍’이니 ‘총풍’이니 하며 북한카드를 국내정치에 교묘히 활용해 왔던 것이 우리의 지난날의 정치사였기 때문에 사람들은 그런 논란들에 대해선 거의 자동적으로 예각적인 반응을 일으키게 되어 있는 것이다.

특히 이번 경우는 그 발언시점이 그럴 만한 까닭을 안고 있었다. 북측이 남쪽의 원내 제1당인 한나라당 총재를 ‘놈’으로 욕하며 ‘반통일, 반민족 역적’으로 매도해 야단이 났고, 이에 대해 청와대 관계수석이 양비론(양비론)적 논평을 하면서 문제가 더 악화된 직후에 다시 대통령의 유사한 발언이 이어진 것이다. 이렇게 되면 “청와대 수석의 당초발언도 알고보니 그렇게 된 것이군…”하는 항간의 심증과 유추가 자연히 뒤따르게 마련인 것이다. ‘북한의 힘을 빌려 차기정권도 민주당이 차지하겠다는 장기집권 음모’라는 한나라당 주장은 그런 상황인식의 연장선상에 있다.

남북문제는 어느 한 정권만이 전담할 수도 없고 또 그렇게 한다고 해서 단숨에 다 이뤄지는 것도 아니다. 그야말로 대(대)를 이어 차근차근 신중하고 사려깊게 접근하지 않으면 안 되는 어려운 과업이다. 대통령 자신도 그런 취지의 말을 여러 차례 했던 게 사실이다. 우선 청와대부터 말을 가려서 하고 아끼는 것만이 정국의 혼미와 혼선을 푸는 첩경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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