金正源
/세종대학교 석좌교수·국제정치학

“북한 핵문제의 해결을 위해서는 이제 평양보다는 베이징이 결심을 해야 하는 순간이 왔습니다. 한국도 중국을 설득하는 데 집중해야 할 것입니다.” 최근 워싱턴에서 만난 제임스 릴리 전 주중·주한 미국대사는 파국으로 치닫고 있는 북한 핵 사태의 향방을 그렇게 진단했다.

지난 10여년 동안 미국은 북한 핵문제를 다루면서 중국의 긍정적 역할을 고대해왔다. 중국만큼 북한에 정치·군사·경제적으로 영향력을 발휘하는 국가가 없다는 판단 아래 북한 핵, 미사일 위기가 터지면 주변국들은 중국이 북한을 설득해 줄 것을 요청해왔다. 그럴 때마다 중국은 언제나 ‘내정간섭 할 수 없다’며 북한 카드를 중국의 외교력으로 활용해왔다.

그러나 지난 3월 제10차 전인대(全人大)에서 후진타오 등 새로운 정치인들이 전면에 등장하면서 상황이 달라지기 시작했다. 미국통인 리자오싱이 외교부 사령탑이 되고 20여개국에서 공부한 1천여명의 해외유학파들이 당을 장악하면서 북한 핵에 대한 중국의 입장도 ‘모른다’가 아니라, ‘시간을 달라’는 가변적인 입장으로 선회한 것이다.

중국은 한편으로는 북한에 대한 영향력을 유지하기 위해 유엔 안보리에서 거부권을 행사하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미국과 극비리에 북한 핵 보유 반대, 북한의 개혁개방 추진이라는 2가지 대원칙에 합의했다.

근자에 중국 외교가에서는 북한 붕괴로 인한 부작용만 우려할 것이 아니라 핵 보유를 막기 위한 ‘대북 교역 전면 중단’ 또는 ‘북한 정권 교체’ 등 중국의 신행동주의(new activism)를 실행해야 한다는 주장까지 제기되고 있다

중국이 사스 대란 와중에도 3자회담을 추진하는 등 능동적으로 변화한 것은 미국의 대륙 시나리오가 중국과 북한을 동시에 압박하는 방식이라는 것을 간파했기 때문이다. 또한 북한 핵을 방치할 경우 동북아의 세력 균형에 커다란 지각 변동을 가져올 수 있다는 판단이 작용한 것이다.

부시 행정부는 북한 핵의 레드라인을 구체적으로 제시한 적은 없지만, 전문가들은 ‘공개적인 핵 보유 선언’, ‘핵 물질의 수출 또는 핵 실험’이 미국의 군사적 행동을 유도하는 방아쇠가 될 것이라고 말해왔다.

북한은 이번에 핵 보유와 판매까지 거론했다. 워싱턴에서는 북한의 진의를 파악하는 데 주력하면서 다자 회담이 실패할 경우에 대비한 시나리오가 제기되고 있다.

첫째, 해상봉쇄와 가혹한 경제 제재다. 일본 외교가에서 강력히 제기되고 있는 방법론이다. 해상 봉쇄를 통해 북한 핵의 확산을 저지하고 북한의 자금줄을 막을 수 있다는 점에서 군사 공격 못지않은 위력을 발휘할 수 있다는 것이다.

둘째, 유엔을 통한 무장해제 결의다. 다자채널이 실패한 뒤 핵 비확산 차원에서 북한문제가 본격 논의될 경우 김정일은 사담 후세인과 동일시될 것이다.

만약 유엔의 무장해제 결의에도 불구하고 벼랑 끝 전략을 고수한다면 김정일 축출을 위한 국소적 군사 공격도 고려될 것이며, 북한 정권 교체가 최종 목표가 될것이다.

셋째, 주변국의 군비 강화다. 북한 핵 보유가 현실이 되면 일본과 대만의 핵 보유 필요성이 다시 고개를 들 것이다. 또 이라크 전쟁에서 쿠웨이트 등지에 설치한 미사일 방어(MD)가 긍정적인 성과를 거두면서 일본·대만·한국의 MD 논의가 본격화될 것이다. 이는 북한뿐만 아니라 중국에 대한 엄청난 군사적 압박이자 동북아를 재무장하는 결과를 가져올 것이다.

중국은 북한에 원유 70%, 곡물 60% 이상을 수출하고, 북한 경제회복에 핵심적인 기계 설비를 제공해온 경제적 동반자이자 군사적 혈맹이다. 또한 중국은 UN안보리에서 북한을 비호하는 유일한 국가다.

중국이 움직이지 않으면 국제 사회의 경제 제재도, 해상 봉쇄도, 유엔 결의도 성공할 수 없다. 이제 공은 중국으로 넘어갔다. 북한 핵 폐기를 위한 중국의 카드를 사용해야 한다.
/ 세종대 교수·국제정치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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