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평양에서 시작된 남북 장관급회담은 노무현 정부가 앞으로 남북관계와 북핵 문제를 어떻게 다룰 것인가를 가늠해 볼 수 있는 자리가 될 것이다. 오는 29일까지 계속될 이 회담에 대한 국내외적인 관심이 다른 어느 때보다 높은 것은 지난주에 열린 베이징 3자회담에서 북한이 ‘이미 핵을 보유하고 있다’고 시인한 직후에 열리는 데다, 한국의 새정부 출범 후 처음 갖는 본격적인 남북회담이기 때문이다.

결국 이번 회담은 국제사회의 최대 현안으로 떠오르고 있는 북핵 문제에 대한 우리 정부의 인식과 시각, 이를 풀려는 의지와 방법 등을 전 세계에 보여주는 자리가 된 셈이다.

우리 측 수석대표인 정세현 통일부장관은 어제 평양으로 출발하기에 앞서 “기본적으로 북한이 핵을 가지면 안 된다는 입장을 확실히 전달하고, (북한의) 핵 보유 발언이 사실이라면 한반도비핵화 공동선언의 중대한 위반”이라고 말했다. 올바른 지적이다. 그러나 더 중요한 것은 과연 이 같은 입장을 끝까지 관철할 것인가 하는 문제다.

작년 10월 북한 핵문제가 다시 불거진 뒤 한국정부의 공식 입장은 “북핵문제와 남북관계 진전을 병행한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북한이 아예 ‘핵을 가졌다’라고 주장하고 나서면서 한반도의 안정과 평화를 그 뿌리부터 위협하고 있는 마당에 과연 어떤 종류의 ‘남북관계 진전’이 가능할 것인지 의문이다.

만약 이번에도 한국정부가 말로는 북측의 핵 도발을 경고해놓고 막상 서울로 돌아올 때는 이런저런 대북지원 약속이나 해 준 것으로 드러난다면, 세계는 한국정부의 북핵 해결 의지를 더이상 믿지 않게 될 것임이 분명하다.

북핵 해결을 위해서라도 북한과의 대화가 계속되어야 한다는 점에는 동의한다. 그러나 모든 일에는 앞뒤가 있는 법이고, 지금은 북핵 해결에 온 힘을 집중할 때다. 북핵 충격으로 주가가 곤두박질치고 한국경제가 신음하고 있는 것만 봐도 지금 남북관계에서 정부가 해야 할 일의 순서는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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