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 대통령이 국회의 반대 의견에도 불구하고 국가정보원장에 고영구씨를 굳이 임명하려는 것은 걱정스러운 일이다.

북한은 우리 국민을 직접적으로 위협하는 상대이기도 하면서 어떻든 협상해야 하는 상대이기도 한 이중성을 갖고 있다. 국가정보원은 이 중 위협세력으로서의 북한을 관찰하고 대응하는 최전선에 있는 기관이다.

만약 고씨가 적십자사 총재와 같이 북한과 협상하고 돕는 기관의 장(長)으로 임명된다면 크게 문제될 것이 없을 것이다. 그러나 간첩 석방을 외치고 반국가단체의 명예회복 운동을 벌였던 고씨가, 다른 기관도 아닌 대북 최일선에 있는 국가정보원의 수장이 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 국회의 판단이었다.

그런데 집권 핵심들은 국회의 이러한 판단을 ‘냉전적 사고’라고 비난했다. 간첩 잡고 반국가단체와 싸우는 것이 국가정보원의 존재 이유인데, 그 책임자의 자격을 그런 이념과 경력에 따라 검증하는 것이 ‘냉전적’이라면 국정원장은 무슨 기준으로 검증해야 하는가. 집권측의 말대로라면 국가정보원은 존재할 이유가 없는 것이다.

또 청와대는 국회가 친북 편향성이 있다고 지적한 서동만씨에 대해 “그를 국정원 기획조정실장으로 내정한 바가 없다”고 부인했다. 그렇다면 서씨가 그동안 국정원 고위 간부들로부터 보고를 받아온 것은 무엇인지, 안보의 중추기관이 이렇게 무책임하게 되는 대로 운영돼도 좋은 것인지 아연할 뿐이다.

한나라당 못지않게 고씨와 서씨를 반대한 민주당 소속 국회 정보위원들은 “국민들로부터 잘했다는 격려전화가 쏟아지고 있다”고 전했다. 그런데 민주당 핵심들은 정보위원들에 대해 ‘노 대통령과 코드가 안 맞는다’고 비난하면서 ‘정보위원 교체’를 공언하고 있다고 한다. 민주당 핵심들은 정보위원들에게 격려전화를 건 국민들의 생각이 무엇인지 잘 헤아려야 할 것이다.

국정원은 간첩을 더 많이 잡고 북한 정보를 더 많이 수집해야 한다. 집권측은 고영구씨가 이 같은 사명을 갖는 국정원의 ‘개혁 적임자’라고 주장하고 있다. 그렇다면 정부가 의도하는 국정원의 개혁방향은 간첩을 더 잡고 북한 정보를 더 수집하는 것보다는 보안법의 개정과 반국가단체의 명예회복에 앞장서는 것이라는 말과 다름이 없는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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