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기환
(서울파이낸셜포럼 회장)

필자는 지난 12일부터 14일까지 사흘에 걸쳐 서울에서 개최된 미국·유럽·한국 유력 인사들의 삼자회의(Trilateral Commission)에 참석하였다. 이 회의에서 논의된 여러 내용 중 특히 우리나라 장래와 관련된 두 가지 논의를 소개하고, 그것이 우리나라에 갖는 의미를 검토하고자 한다.

그 중 하나는 최근 이라크 전쟁에서 선례가 된 미국에 의한 선제공격의 가능성이 이라크전쟁 이후에도 계속될 것이라는 전망이다. 그 이유는 미국의 전쟁에 대한 인식이 9·11테러로 말미암아 근본적으로 변했기 때문이다.

즉 종전에는 명확한 적과 전선이 존재하여 적에 대한 압도적인 억지력만 확보하면 전쟁을 방지할 수 있었으나, 9·11 이후 발생한 테러와의 전쟁에서는 적의 정체도 불확실하고 전선도 불명확하며, 언제 어디서 테러가 일어날지 모르는 상황이다.

이 때문에 심지어 UN과 같은 국제기구의 사전승낙 없이도 선제공격이 불가피해진다는 것이다. 그래서 미국이 비록 개전 3주 만에 이라크 전역을 거의 점령하는 데 성공하긴 했지만, 앞으로도 안보에 대한 주된 위협이 테러로 인해 발생하는 이상 선제공격과 같은 전술이 지속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이번 회의에서 논의된 두 번째 중요한 내용은 9·11 이후 세계 안보에 대한 위협이 주로 테러에서 기인함으로 말미암아 이곳 동북아에서의 군사동맹 관계에도 큰 변화가 일어나고 있다는 것이다.

구체적으로 말하면 9·11 이전에는 중국과 미국이 군사 면에서 경쟁자적인 관계에 있었으나, 이제는 오히려 동반자적 관계로 발전되고 있다는 것이다. 이와 같은 새로운 관계는 최근 북핵문제 해결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즉 북한의 핵개발은 미국과 마찬가지로 중국도 허용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 이에 더해 한국에서는 특히 젊은 세대를 중심으로 북한으로부터 안보위협을 느끼지 않고 있다 보니 주한미군의 전쟁 억지(抑止) 역할에 대한 명분이 약해질 수밖에 없다.

이상과 같은 국제 안보환경과 전쟁에 대한 인식 변화, 그리고 그것이 동북아 국제관계에 미치는 영향을 고려할 때, 우리나라의 대미 외교정책이나 남북정책에 여러 가지 문제가 있다는 사실을 쉽게 느낄 수 있다.

예컨대 미국의 초미의 관심사가 국제적인 테러 방지에 있다면 미국은 의당 한국과 같은 어떤 한 지역에 자신의 병력을 장기 주둔시키는 것이 아니고, 오히려 기동력 있는 군대 조직과 배치를 원하게 마련이다. 이처럼 상황이 변했는데, 우리가 냉전시대의 사고에 기초해 주한미군의 인계철선 역할을 계속 고집하게 되면 문제가 있다.

뿐만 아니라 북한 핵과 관련해서도 미국의 현재 관심사가 북한의 핵개발이 이 지역의 군사 역학관계에 미치는 영향이라기보다는 오히려 북한이 개발한 핵물질이 국제테러단체의 손에 들어가는 것을 우려하는 것이라면, 어떻게 하든지 우리는 핵개발에 대한 국제기구의 감시와 투명성을 보장하도록 북한을 설득하는 것을 최우선 과제로 삼아야 할 것이다. 그러나 그간 우리의 정책은 남북화해에만 집중한 측면이 있다.

한마디로 말하면 상술한 국제 안보환경과 전쟁에 대한 개념의 변화, 그리고 동북아에서의 미국과 중국 간의 새로운 관계형성 등을 감안하면, 우리의 대미(對美)관계는 물론 남북관계 발전에 대한 정책은 완전히 새로운 시각에서 시급히 검토·조정되어야 한다.

그래야만 현재 우리 경제에 드리워진 여러 가지 불확실한 요소도 제거될 수 있다. 따라서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우리 정부가 이와 같은 새로운 정책 환경에 맞는 정책 방향과 대책을 지체 없이 수립해 주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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