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적단체로 규정돼 많은 구성원들이 수배상태에 있는 한총련이 스스로 합법화 노력을 기울일 움직임을 보이고 있는 것은 일단 주목할만한 방향 설정이다.

한총련의 강령과 규칙을 민주적으로 개정하겠다고 약속한 후보가 새 의장에 당선된 사실과 그가 당선 일성(一聲)으로 한총련의 ‘발전적 해체’ 가능성을 언급한 것은 새로운 변화 조짐이라고 할 만하다.

물론 이러한 움직임이 한총련의 한계 상황을 타개하기 위한 일시적인 전술변화에 그칠지, 아니면 기존 노선이나 운동방식의 근본적인 변화로 이어질 수 있을지는 좀더 지켜볼 필요가 있다.

강령과 규칙이 구체적으로 어떤 방향으로 바뀔지도 미지수이다. 한 달 전 의장 선출을 위한 대의원대회가 무산되는 등 한총련 내부 사정도 단순치 않아 보인다.

그러나 어쨌든 한총련 내부에서 변화의 목소리가 일고 있는 데에는 이 조직이 그동안 지나치게 정치·통일 투쟁에 치우친 데다 운동방식이 획일적이라는 비판 때문에 대학가에서마저 점차 대중성을 상실해 온 데 따른 반성과 고민이 작용했을 것이다.

학생운동의 원동력은 시대변화를 선도하는 역동성과 순수성에서 나오는 것임에도 한총련의 노선과 관심분야는 폐쇄적일 뿐 아니라 시대에 뒤진다는 지적을 벌써 오래전부터 받아왔다.

장기 수배상태로 고통받는 한총련 간부들의 어려운 처지에 동정을 보내면서도 한총련 합법화에 선뜻 동의하지 못하는 국민여론도 이 단체의 친북적 이적성에 대한 우려를 떨칠 수 없기 때문이다.

한총련이 진정한 학생운동의 전통을 잇는 단체로 거듭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먼저 스스로 이적성에 관한 논란을 말끔히 정리하고 미래를 향한 열린 대안(代案)과 대학생들의 다양한 의견과 요구를 수렴해 낼 수 있는 조직이 돼야 한다.
저작권자 © 조선일보 동북아연구소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