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동안 당국자들은 물론 온국민을 혼란스럽게 만들었던 김정일(김정일)·장쩌민(강택민)의 북경회동설이 마침내 사실로 확인되었다. 김정일의 중국방문과 관련한 우리의 관심은 서너가지로 요약된다. 우선 그가 무슨 목적으로 북경을 찾아갔으며, 북한과 중국은 그 사실을 왜 그토록 극비에 부쳤으며, 그리고 아무리 비밀리에 이루어졌다고 하지만 우리 정부는 어찌하여 김의 북경방문 사실을 그토록 까마득히 모르고 있었느냐 하는 점이다.

외교 당국자들의 말로는 두 나라 정상은 오는 12일로 다가온 남북 정상회담을 비롯해 양국간 경제협력, 그리고 국내 정세와 개혁 개방에 대해 의견을 교환했다고 한다. 굳이 정부의 설명이 아니더라도 김의 북경방문 목적이 일차적으로 남북 정상회담과 관련되어 있을 것이라는 점은 쉽게 짐작할 수 있다. 우리 정부가 그동안 정상회담과 관련해 미국 및 일본과 긴밀한 공조체제를 유지해왔듯이 북한도 나름대로 최대 우방인 중국과 협조할 필요성을 느꼈을 것이다. 만일 이번 회담이 ‘한·미 관계에 대응하는 북·중 관계’의 설정에 관한 것이라면 이것은 북한이 앞으로 군사적 관점보다 경제적 관점으로 옮겨갈 수 있다는 엄청난 변화를 의미하는 것이다.

한반도 긴장완화와 평화정착, 이를 위한 남북간의 대화 필요성을 꾸준히 강조해온 중국정부인 만큼 장 주석이 정상회담을 앞두고 김정일을 만났다는 것은 일단 당연한 것으로 보아야 할 것이다. 우리정부도 한반도 평화정착을 위해선 중국의 협조가 필수적이라는 입장이다. 다만 이해하기 힘든 것은 북한당국은 물론 중국정부가 김의 북경방문을 무슨 이유로 그처럼 극비에 부쳐 쉬쉬 했느냐 하는 점이다. 중국 외교부는 김의 방중(방중)이 정식 외교채널을 통한 것이 아니라 양국 당차원의 비공식 방문이었기 때문에 사전에 이를 한국측에 알리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아무리 그렇더라도 모든 분야에서 투명성이 요구되는 세계화 시대에 ‘철의 장막’ 시대의 구태를 버리지 못하고 회담의 내용도 아닌 방문사실 자체까지 비밀주의로 덮었다는 것은 납득하기 어렵다. 한반도 문제의 해결은 상호간의 신뢰가 최우선이다. 불필요한 비밀주의로 상대를 긴장시키는 것은 남북 정상회담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

김의 북경방문 사실 확인과정에서 드러난 정부의 정보수집 한계도 보통 문제가 아니다. 북한의 동향은 차치하더라도, 중국땅에서 일어난 일에 대해서도 그토록 깜깜절벽이었다는 점만은 분명히 짚고 넘어갈 중대사다. 이래가지고 어떻게 앞으로 대북·대중국 외교를 수행해 나갈지 심히 걱정되고 불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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