朴玟哉/변호사

현대그룹의 대북송금사건 특별검사법(특검법) 실시를 놓고 노무현 대통령이 법률안 거부권 행사를 검토하고 있다는 보도가 나오는 등 논란이 일고 있다. 한나라당은 특검법을 한 자(字)도 고칠 수 없다는 입장인 데 반해 민주당은 남북관계의 미래를 위해 특검은 바람직하지 않다며 재협상을 요구하고 있다고 한다. 청와대는 거부권 행사 여부 시한인 14일 국무회의에서 결정을 내린다는 입장이다.

거부권이란 국회가 의결해 정부에 이송한 법률안에 대해 대통령이 이의를 가질 때 국회의 재의에 부칠 수 있는 대통령의 헌법상 권한이다.

대통령은 그 법률안이 헌법에 위반된다고 생각되거나 집행이 불가능하거나, 대통령이나 행정부처에 대한 부당한 정치적 압력을 내용으로 하는 등 정당한 이유와 필요성이 있는 경우에 거부권을 행사할 수 있다. 대북비밀송금 특검법안에 대해 거부권을 행사해야 할 정당한 이유나 필요성이 있는지는 결국 특별검사제 도입의 필요성에 대한 논란으로 귀착된다.

그렇다면 특검제는 과연 도입되어야 하는가? 특검제는 사법처리를 전제로 하는 제도다. 이는 검사의 기소독점권에 대한 예외를 인정하는 것인데, 조직체계상 검사보다 정치적 독립성을 보장받을 수 있지만, 이러한 예외는 어디까지나 극단적인 처방에 해당한다.

극단적 처방은 다른 수단으로는 목적을 달성할 수 없는 경우에 예외적으로 취해져야 한다. 즉 보충성의 원칙이 적용되어야 한다. 기존의 제도나 조직을 통해 충분히 할 수 있는 일을 특별법을 만들면서까지 예외를 양산할 필요는 없는 것이다. 예외의 생산에 드는 경제적, 정치적, 사회적 비용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우리 국민은 지금 너나없이 대북비밀송금에 관한 진실을 알고 싶어 한다. 그런데 이런 국민의 의혹을 풀어 줄 수 있는 곳은 우선 국회와 검찰이다. 국회는 특정 국정사안에 대하여 조사할 필요가 있을 때, 국회의 재적의원 3분의 1 이상의 요구가 있는 경우에 조사위원회를 구성, 공개리에 국정조사를 할 수 있다.

그리고 위원회가 의장을 거쳐 조사보고서를 본회의에 보고하면 본회의는 의결로 조사결과를 처리하고, 정부 또는 해당기관에서 처리하는 것이 타당하다고 인정되는 사항은 정부 또는 해당기관에 이송한다. 이송받은 기관은 처리결과를 국회에 보고하여야 한다. 청문회 방식도 고려해 볼 수 있다.

이렇게 해서 만일 사법처리가 불가피한 범죄혐의가 드러난다면 그때 가서 먼저 특별검사가 아닌 검찰청의 ‘보통 검사’가 나설 수 있다. 검찰은 범죄에 대한 주관적 혐의만 있으면 언제든지 수사를 개시할 수 있다. 검찰이 이 문제를 수사하지 못할 아무런 이유가 없다. 단지 종전의 검찰 수뇌부가 자신들의 수사권을 정중하게 정치권에 양보한 상태일 뿐이다.

최근 검찰 인사가 바람직한 방향으로 이루어진 것이라면 특검법안이 검사의 수사권을 배제하고 있는 것은 아니기 때문에 검찰은 얼마든지 다시 이 문제를 수사할 수 있다. 일부에서는 미리부터 통치행위 운운하며 사법처리에 쐐기를 박고 있는데, 이는 일단 진상을 규명해 놓고 나서 따져 볼 일이지 지금부터 논의할 일은 아니다. 우리에게는 ‘반공’이면 찍 소리 못하던 시절이 있었듯이, 지금 ‘통일’이 모든 범법행위의 면죄부가 되는 것인지는 의문이다.

특검제는 그 다음에 판단해 볼 일이다. 검찰수사마저 믿을 수 없다면 그때는 국민들이 나서서 특검제를 요청할 것이다. 먼저 국회의 조사부터 시작하여, 국민들이 직접 국회의 진행과정을 관찰하고 중간중간 점검하면서 조사가 미진한 부분에 대해 지적·보완하게 한다면 그 객관성과 투명성이 훨씬 더 보장될 것이다. 우리 국민들도 정치적 관심이 높아져서 열띤 토론의 장으로 모여들고, 그 결과에 대해서도 국민적 합의가 자연스럽게 이루어질 수 있을 것이다.

특검제는 아직 시기상조다. 국회에 의한 조사부터 시작한 다음 순차적으로 검토해도 결코 늦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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