禹泰榮

북한 핵 위기가 고조되는 요즘 한국을 방문한 외국기자들의 눈에 가장 의아하게 보이는 것 중의 하나가 한국의 평온함이다. 한국에 머무는 외교관들 중 상당수는 북한 핵 위기가 계속될 경우 미국이 북한을 폭격할 가능성이 크다고 믿고 있다. 최근 만난 한 일본 외교관은 미군이 철수하면 자국민들의 철수를 시작하지 않을 수 없다고 말했다.

이처럼 미국이 북한을 폭격한다는 이야기가 공공연히 논의되고, 전쟁이 시작되면 며칠 만에 한국인 수백만명이 죽을 것으로 예상된다는 보도가 나오며 외교관들은 암암리에 철수 대책을 세우는데도, 한국사람들은 예전에 하던 대로 정쟁에 몰두하고 술집은 불야성을 이루는 등 천하태평이라는 것이다.

사실 국내적으로는 새 대통령 취임, 국제적으로는 이라크 사태로 북한 핵문제의 위중함이 제대로 국민들에게 알려지지 않은 느낌이다. 하지만 부시의 말을 자세히 들어보면 언제 북한에 대해 폭격명령이 떨어질지 매우 걱정되는 상황이다.

지난 7일 부시 대통령은 유엔 결의 없이도 이라크를 공격할 수 있다고 다짐하면서 후세인 이라크 대통령이 대량살상무기나 미사일을 개발하지 않는다고 한 약속을 믿을 수 없다는 점을 근거로 제시했다.

그는 이어 “후세인은 미국에 위협이 되며, 이라크 주변국들에 위협인 동시에, 이라크 국민들에게도 위협이 되는 독재자”이므로 축출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똑같은 논리를 북한에 적용해 볼 수 있다. 부시 대통령의 입장에서 보면 북한은 핵개발을 하지 않겠다는 약속을 저버렸으며 미사일개발도 계속하고 있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미국에 위협이 되며, 한국·일본 등 북한 주변국들에 위협인 동시에, 200만 국민들을 굶겨 죽이면서 철권독재를 행사하고 있으므로 북한주민들에게도 위협이 되는 독재자이다. 부시로서는 북한을 공격할 명분이나 정당성은 충분히 쌓여 있는 상황이다.

그러나 공격 이후를 생각하면 북한 문제는 이라크와는 아주 다른 시나리오가 가능해지는 변수들이 도사리고 있다.

첫째, 미국은 이라크를 공격해 후세인을 축출한 뒤 미 군정을 실시하고 민주주의 정권을 세운다는 분명한 계획을 갖고 있다. 이라크라는 나라와 국민, 영토는 보존한다. 미국이 북한을 공격할 경우에도 목표는 김정일 국방위원장을 축출하고 민주적인 체제로 대체하는 체제변화(regime change)가 될 가능성이 매우 크다.

미국이 북한이라는 국가와 영토를 계속 보존하려 할 가능성은 거의 없다. 그렇다면 핵 위기의 악화를 막겠다고 시작한 미국의 예방전쟁은 결국 한반도 통일전쟁이 된다. 그런데 전후 처리 과정에 관해 미국은 어떤 구체적 계획을 갖고 있지 않은 것으로 알려져 있으며, 한·미 사이에 이런 것이 논의된 바도 없다.

둘째, 현재 이라크에서 후세인 정권은 소수파이다. 북부에는 쿠르드족이 사실상 자치를 하고 있고, 남부에서는 후세인에 반발하는 시아파 이슬람교도들이 무장투쟁을 벌인다. 이들은 이미 미국 등 서방측 정보기관과 협조하며 자체적인 군대를 양성할 정도로 독자적인 활동을 한다. 미국의 군정 및 민주주의 정권으로의 이행계획은 후세인의 독재에 반발하는 이들 다수의 쿠르드족, 시아파의 존재에 기반한다.

그러나 북한에서 김정일 국방위원장을 축출한다고 할 때에 절대다수의 주민들이 독재자의 퇴위를 반기며 미군에 협조하는 일이 발생할 것인가. 북한 독재체재가 다수의 국민을 전쟁에 동원할 능력을 여전히 유지한다면 북한의 전쟁수행 능력은 장기화될 가능성도 있다.

북한 핵문제는 이라크와는 전혀 다르다. 미국이 북한 핵을 제거하기 위해 예방전쟁을 감행할 경우 이는 곧바로 제2의 한국전쟁으로 치달을 가능성이 크다. 국민들의 목숨이 달린 국가안보 전략만큼은 장밋빛 시나리오만을 떠올리며 투기하듯 해선 안 된다. 전쟁이라는 최악의 상황을 회피하는 데 전력을 기울여야 할 때다.
/ 국제부 차장 tywoo@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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