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북한 당국이 오는 6월 평양에서 정상회담을 갖기로 한 것은 남북한을 위해서 중대한 진전이며 동시에 김대중 대통령으로서는 괄목할 만한 업적이다. 우리는 이것을 계기로 지구상에서 유일한 냉전지대로 남아있는 한반도 냉전구조 해체의 단초가 열리기를 기대한다. 그리하여 한반도 평화가 정착해서 화해와 협력의 성숙한 단계로 나아갈 수 있기를 기대한다.

이번 회담이 갖는 의의는 무엇보다도 민간레벨이 아닌 쌍방 당국자들이, 그것도 남북 최고당국자들이 민족적 현안(현안)문제를 직접 논의한다는 점이다. 지금까지 남한 당국과의 대화를 거부해온 북한을 일단 당국대화로 이끌고 더 나아가 정상회담의 길을 연 것은 평가할 만한 일이다. 분단 반세기 만에 최고 당국자들이 남북문제의 돌파구를 찾아내고 이것이 군사, 경제, 정치 부문의 당국자 회담으로 이어져 상호군축, 투자보장협정, 이산가족 문제의 해결점을 찾아낸다면 남북관계는 실질적인 공존관계에 들어선다고 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동안 당국간 대화를 기피해온 북한이 정상회담을 수용한 것은 미·일·중 등 주변국의 지속적인 대화 권유, 그리고 최근 실용주의 외교노선으로 전환한 북한자체의 필요에 따라 이제는 남한과의 대화를 계속 외면만 할 수는 없다는 현실인식에서 비롯된 것이라 할 수 있다. 미국 및 일본과의 회담에서 유리한 분위기를 조성할 필요성도 물론 작용했을 것이다. 대화를 할 양이면 ‘베를린 선언’ 등 지속적인 포용정책을 추진하고 있는 현 정부와 대화하는 것이 유리하다는 전략적 판단도 자리잡고 있을 것이다.

김영삼정부 때 북한이 정상회담에 응한 것은 미국의 ‘위협’으로부터 ‘새로운 전기’를 찾겠다는 의미가 강했던데 비해 이번은 내부의 어려움을 남한의 도움으로 어느 정도 해결하겠다는 의도가 엿보인다. 그래서 이번 회담과정에서 북한은 어느 때보다도 많은 물질적 지원을 요구할 것으로 전망되며, 성사가능성도 높다고 할 수 있다. 실질적인 남북관계가 개선된다면 우리로서 어느 정도의 부담은 불가피하다. 그러나 낙관은 금물이다.

남북 정상회담은 이제 운(운)을 뗀 단계에 불과하다. 회담에서 가장 중요한 의제도 결정되지 않았다. 실무회담을 통해 의제를 선정하고 내부적으로 이것을 조율하는 과정이 정상적인 국가간에도 쉽지 않은데 하물며 남북간에는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총론에는 찬성하고 각론에선 반대해온’ 북한의 회담방식도 유념해야 할 것이고, 사태가 여의치 않으면 언제든 가차없이 회담을 깨버리는 종래의 북한 태도도 염두에 두어야 할 것이다.

회담의 성공을 위해선 철저한 사전준비가 필요할 것이다. 정상회담이 가져올 성과에 미리 연연하지 말고 지금부터 의제에 대한 기본원칙을 세우고 우리 내부의 입장정리를 분명히 해야 한다. 그리고 미국 등 주변국가와의 사전조율도 철저히 해야 한다. 국민의 의견도 충분히 수렴하고 경청해야 한다. 남북간의 합의 때문에 불가피한 측면이 있긴 하지만 이번 정상회담 발표의 시점이 16대 총선을 불과 3일을 앞두고 이루어졌다는 것이 아쉬운 대목이다.
저작권자 © 조선일보 동북아연구소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