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 당선자는 어제 대한상공회의소 초청 강연에서 “전쟁을 막고 불안을 없애기 위해서는 (미국과) 다른 의견도 말해야 한다”고 말했다. 노 당선자는 그 이유로 “전쟁은 안 된다고 말하면서 미국과 다른 의견을 말하지 말라는 조언을 하는 사람이 많다. 그러나 이 두 가지는 모순된다”고 말했다.

그러나 미국과 입장이 같으면 전쟁으로 이어지는 것 같은 인상을 주는 당선자 발언의 근거가 무엇인지 궁금하다. 북한이 핵 개발을 강행할 경우에 대비한 대북(對北) 제재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고 미국 언론이 보도한 적은 있지만, 아직 미국 정부가 이를 공식 확인한 것은 아니다.

그리고 부시 미국 대통령이 “북한을 공격할 의사가 없다”고 거듭 밝혔는데도 이런 이야기를 하는 이유가 무엇인지를 국민이 납득할 수 있게 밝혀야 할 것이다.

그리고 만약 “북한 핵 해결을 위해 (군사적 수단을 포함한) 모든 방안을 강구하고 있다”는 미국측 발언 때문이라면 북한의 벼랑 끝 전술에 맞설 복안은 무엇인가? 대북 협상에서는 전술적 필요 때문이라도 상(賞)과 벌(罰)이 병행해야 한다. 노 당선자가 그토록 대북 설득에 자신이 있다면 ‘미국과 다름’을 자꾸 이야기하기보다는 차라리 북핵문제에서 작은 성과라도 보여주는 게 일의 순서다.

그런데 노 당선자는 한술 더 떠 “국민들이 최악의 사태에 대해서도 애국심을 갖고 자기 할 일을 꿋꿋이 하겠다는 결의를 보여줘야 한다”고 말했다. 이것이 오히려 불안심리를 부추기는 것은 아닌지 걱정된다.

대통령의 발언은 그 의도가 아니라 받아들이는 측의 해석에 의해 의미가 결정된다는 점에서 닷새 후면 대통령에 취임할 노 당선자는 단어 하나하나에 신중을 기해야 할 것이다. 특히 대외문제에 관한 언급은 준비된 원고를 따르는 조심스러움이 필요하다.

얼마 전 미국 TV에 출연한 주한미군 사령관이 한국 내 반미(反美) 문제를 언급하다 눈물까지 흘렸다고 한다. 현 상황은 한·미 모두가 냉정을 되찾고 그 치유책을 찾아야지, 아픈 상처를 계속 헤집고 있을 때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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