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북 5억달러 뒷거래와 관련해 김대중 대통령과 현대측 정몽헌씨가 입장을 밝히자 여권이 일제히 ‘정치적 해결’을 위한 분위기 조성에 나서고 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사전에 짜맞춘 듯한 두 사람의 발표는 의혹만을 부풀렸으며, 이를 계기로 한 ‘정치적 해결’이란 것도 가당치 않은 국민기만일 뿐이다. 남북관계, 국내정치, 시장경제를 위해서도 지난 5년간 남북 정권과 현대의 삼각관계 속에서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낱낱이 밝혀야 한다.

여권은 5억달러 뒷돈이 마치 평화의 대가인 것처럼 주장하고 있다. 그러나 지금 우리가 직면한 것은 평화가 아니라 우리의 목을 겨눈 북한의 핵폭탄 개발과 그로 인한 심각한 안보불안이다. 그리고 지난 5년간 단 1문(門)도 줄지 않은 채 한 시간에 수십만발을 서울에 떨어뜨릴 수 있다는 북한의 거대한 포대다.

5억달러를 챙긴 북한정권이 남북정상회담을 총선거에 이용하는 남한정권과 거기에 꼼짝없이 넘어가는 남한사회를 어떤 시각으로 바라보았을지는 불문가지다. 그들의 이와 같은 대남인식이 앞으로 어떤 오판을 불러올지 모른다. 이 사건마저 유야무야된다면 남북관계를 남한의 정치적 흥행에 이용하려는 기도는 되풀이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

현대는 지난 5년간 직·간접으로 무려 33조원에 달하는 지원을 받아냈다. 회사채 신속인수제 같은 듣도 보도 못한 수단까지 동원됐다. 이 비상식적인 시장왜곡을 남북정권의 정상회담 뒷거래와 떼어놓고 설명하기란 불가능하다. 이 왜곡이 우리 국민과 시장에 떠넘긴 부담을 안다면, 정치적 해결을 운운할 수는 없을 것이다.

정권과 기업이 짜고 국책은행과 시장 여기저기서 5억달러를 빼낸 다음, 기업은 엉터리 장부를 만들고, 정권은 이런 기업을 뒤에서 마구 지원했다. 국제사회에 언필칭 ‘투명성’을 약속했던 정권이었다. 국제사회는 우리가 이 사건을 어떻게 처리하는지 주시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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