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북(대북)정책의 주요 고려 사항 중의 하나는 북한체제가 얼마나 오래 지속될 것인가에 대한 판단이다. 단기간에 붕괴될 것으로 판단한다면 거기에 맞는 정책을 펴야 하고, 그렇지 않다고 생각할 때는 다른 방안을 강구해야 한다. 그러나 어느 경우든 너무 한쪽으로만 치우치다 보면 정책의 유연성을 잃을 가능성이 크다. ▶김영삼 정부의 판단은 조기 붕괴쪽이었다. 이른바 ‘고장난 비행기론(론)’이었다. 북한체제는 고장난 비행기처럼 구조적으로 결함을 갖고 있기 때문에 식량난, 에너지난, 외화난은 불가피하며 그런 상태로는 오래 가지 못한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당시 정부나 학계의 중요한 화두는 북한 붕괴 후의 대비책을 얼마나 효과적으로 잘 세우는가였다. ▶김대중 정부는 그와는 정반대다. 북한체제는 쉽게 무너지지 않을 것이기 때문에 단계적인 접근을 통해 북한의 변화를 유도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른바‘햇볕론’으로 불리는 이 정책은 북한의 조기붕괴에 대해서는 전혀 고려조차 하지 않고 있다. 우리가 잘 해주기만 하면 북(북)은 도발도 하지 않고 남북화해에 긍정적으로 응할 것이라는‘낙관론’이 짙게 깔려 있다. ▶그런데 테닛 미국 중앙정보국장은 최근 상원 정보위원회에서 우리 정부의 인식과는 전혀 다른 증언을 해 관심을 끌었다. 그는 “북한은 경제난과 주민들의 지도자에 대한 신뢰 상실로 갑작스럽고 과격하며, 어쩌면 위험한 변화가 현실화할 가능성이 상존하고 있다”며 “이 변화는 어느 때고 찾아올 수 있다”고 말했다. ▶동독의 붕괴를 예측한 사람이 아무도 없었듯이 테닛의 증언이 현실화할지 안 할지는 아무도 모른다. 그러나 그의 주장은 ‘북한정권은 망하지 않는다’는 전제하에 모든 대북정책을 추진하고 있는 현 정부의 낙관론은 위험하다는 경고를 담고 있다. 낙관적이든 비관적이든 외곬 정책은 퇴로(퇴로)가 없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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