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찬복/명지대 교수ㆍ정치학

대북송금 2억달러 비밀지원 의혹에 대한 특검제 채택 여부가 국민들의 초미의 관심사로 떠오른 이후 청와대측과 노무현 대통령 당선자측의 입장표명이 여러차례 있었지만 ‘말 바꾸기’란 평과 더불어 의혹은 오히려 눈덩이처럼 불어나기만 하였다.

마침내 김대중 대통령은 어제 대국민담화를 다시 냈지만 대북송금액이 5억달러였다는 것과 김 대통령 자신이 모든 책임을 지겠다는 것 외에는 그 전에 발표한 기조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한 것 같아 국민적 의혹이 해소될지 의문이다.

그 동안 대북송금 관련 의혹의 쟁점은 실정법 위반에 대한 처벌 여부, 정상회담의 대가성 여부, 통치행위의 정당성과 위법성 문제, 지금 와서 반국가단체란 말이 왜 나오는지, 정치적 결단의 의미, 무엇이 국익이며 공개되면 현대는 왜 망하는가 등으로 국가대계가 걸린 의문은 여전히 남는다.

보기에 따라서는 어제의 대국민담화와 임동원 특보의 보충설명은 사정이 그러하니 정치적 결단을 통해 덮어버리는 것이 좋겠다는 의지의 표명으로 들리기도 한다.

지난 반세기가 넘는 동안 한국정치가 늘 그러해 왔듯이 잘못을 서로 덮어주고 감춰주며 여야가 머리를 맞대는 것은 국민을 속이는 정치음모인데 혹시라도 이를 정치타협이나 상생정치란 이름으로 덮어 버리려는 것은 아닌가 하는 의구심이 있기에 자칫 국회불신만 초래하고 의혹은 그대로 남을 수도 있다.

정치음모는 정치현상을 무수히 왜곡시키는 부패의 온상이지 정치타협이나 정치적 결단의 참의미로 대체될 수 없다. 잠시는 몰라도 정치음모는 반드시 지지 쇠퇴로 귀결돼 레임덕 현상으로 나타난 것이 역사적 경험이다.

남북의 상호 교류와 협력이 평화공존을 위한 길이란 것을 거부하는 사람들은 드물 것이다. 통일의 역사적 당위성 때문에 대북문제는 계속 부닥칠 수밖에 없다.

대북정책이란 근원적으로 이해를 달리하는 국가간의 협상이므로 국민적 지지 속에서 모든 정책이 추진돼야 힘이 생기고 협상에서 유리한 고지를 얻는다. 특히 재정지원은 국민의 재산변동과 직결되는 문제이기에 반드시 투명해야 한다.

설사 경협이 기업의 단순한 상거래에 의한다 해도 그것이 평화와 통일을 전제한 것인데다 현대는 이미 거대기업으로서 국가경제에 엄청난 영향을 미치는 국민적 기업이므로 투명화와 국민적 지지속에 이뤄져야 현대도 살고 국익에도 도움이 된다.

햇볕정책을 수립, 추진하는 과정에 국회 논의를 거쳐야 함에도 정권측 소수인사들이 독단하고는 무조건 지지해 달라고 호소해 온 방식이 잘못된 것이다. 더욱이 국민의혹까지 통치행위로 간주되는 것은 아니다. 설사 정권 측에서 볼 때 옳은 정책이라 해도 국민적 설득과 국회 논의에 실패하면 추진을 재고해야 하는 것이 원칙이고 민주주의이다.

다시 말해 국민여론 위에 갖다 놓지 못하는 정책을 개혁이란 이름으로 초법적·혁명적 조치를 통해 겁을 주어 밀어붙이면 그것이 바로 권위주의 정치이다. 내 편은 껴안고 상대 편은 골라내는 식은 개혁이 아니라 쿠데타나 혁명일 뿐이다.

이렇게 되면 민주주의는 불투명하게 되고 정치권은 그들대로, 국민은 국민대로 파가 갈리고 다양한 갈등국면으로 접어들어 콩가루 집안이 된다.

그동안 남북문제를 걸핏하면 동·서독 통일모형에 비유하느라 엄청난 낭비를 초래해 왔다. 독일 통일은 고르바초프의 개혁 실패와 미국의 소련 붕괴전략이 맞물려 구(舊)소련을 비롯한 동구 공산권 정권들의 붕괴 도미노 현상에서 동독이 무너진 것을 서독이 떠안은 것에 불과하다.

물론 서독의 통일준비가 통일후 동서간의 후유증을 줄이는데 도움이 된 것은 사실이다. 우리의 남북관계는 동·서독과 본말이 다르다.

또 우리는 그동안 남북관계는 보수와 진보의 관계설정으로 한쪽이 다른 한쪽을 밀어내는 식으로 해서 한쪽만의 지지 속에서 대북관계가 이뤄진 것이 오늘의 불신과 불행을 불러들인 원인이다.

불거진 국민적 의혹은 투명화하는 것이 국민통합과 국익에 도움이 되고 대북협상에도 유리한 고지를 얻게 될 것이므로 이해당사자가 아닌 검찰에 의한 수사를 통해 마무리하는 것이 옳다고 본다.

노 당선자는 “국민적 의혹사건은 정치적 고려 없이 원칙적으로 수사해주길 바란다”고 강조해 온 초심으로 돌아가주길 기대한다.
저작권자 © 조선일보 동북아연구소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