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감스럽게도 우리는 이 사건의 모든 전개과정에서 탈북자 인권을 지키겠다는 정부의 확고한 원칙, 어떤 일이 있더라도 강제송환만은 막겠다는 의지, 중국과 러시아 당국자들과의 끊임없는 접촉흔적을 찾아볼 수가 없다. 정부의 관심과 의지가 보이지 않을 때 전력투구할 외교관들이 있을 리 없다. 임동원 국정원장은 14일 국회에 출석해 ‘언론보도 때문에’ 일이 잘못됐다고 떠넘겼다지만, 소위 ‘선공후득(선공후득)’이라는 백일몽에만 턱없이 매달려온 이 정부의 ‘저자세 햇볕’이야말로 우리의 입지를 바닥으로 떨어뜨린 근본원인이며, 그 정책의 핵심인사로 강제송환 저지에 앞장선 적이 없는 임 원장은 그런 말을 할 자격이 없다.
탈북자 인권에 대한 무원칙은 이 탈북자들이 러시아로 밀입국한 후 3주일이 되도록 현지 외교공관이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않았던 데서 잘 드러났다. 뒤늦게 교섭에 나선 당국은 이들이 ‘난민지위’를 인정받는 데는 성공했지만 러시아 당국이 이들을 중국으로 넘기려는 사실을 전혀 눈치채지 못했다. 중국과의 협상부재와 정보부재도 마찬가지였다. 중국은 이들 탈북자를 북한으로 강제송환한 사실도 하루가 지나서야 통보해줬다. 우리 당국자들은 그런 사실도 모르고 중국 당국이 최소한 탈북자들을 북한으로 송환하지 않을 것이란 헛된 기대만 갖고 있었다.
송환자들이 처형될 것이라는 사실을 충분히 알고 있을 러시아, 특히 중국이 이들을 강제송환한 처사도 인권의 이름으로 규탄받아 마땅하다. 두 나라는 탈북자들을 애써 단순 불법체류자로 규정했지만 북한 내에 상당한 정보망을 가진 두 나라가 송환된 탈북자의 운명을 모를 리 없겠기 때문이다. 외교란 미명 아래 동포의 생명을 가볍게 여기는 것이 햇볕정책의 결과라면 그런 햇볕정책은 마땅히 재고돼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