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은 올해 국가수반의 신년사도 노동신문 등의 공동사설(사설)로 대체했다. 이는 아직도 북한 권력이 과도기적인 상황에 처해 있다는 것을 말하는 것이다. 김정일은 유훈통치 기간에 권력기반을 강화했으나 과거 김일성이 갖고 있던 당(당)과 행정수반의 위치를 차지하기엔 아직도 미흡하다는 반증이다. 그렇다고 실권없는 ‘수반’인 김영남 명의로 신년사를 발표할 수도 없어 공동사설로 대체한 것 같다. ▶그런 탓인지 김정일 떠받들기는 올해에도 여전히 요란했다. TV와 라디오로 30여분간 방송된 공동사설 내용 속에 김정일의 이름이 무려 26차례나 등장했고 그의 다른 호칭인 ‘장군님’까지 합치면 수를 헤아릴 수 없을 정도였다. ‘민족의 태양’ ‘백전백승의 향도자’ 등 온갖 최상의 찬사도 뒤따랐다. ▶그러면서도 정책노선에선 지난해보다 실용주의적인 면모를 보였다. 경제와 과학기술 중시를 전례 없이 강조하면서 이 부분에 총력을 기울이도록 주민들을 독려했다. ‘높은 혁명성에 과학기술이 안받침(안에서 받쳐줌)될 때 사회주의의 성공탑을 세울 수 있다’고 하는가 하면 ‘혁명적 경제건설은 사회주의 경제강국의 전투적 기치’라고 하기도 했다. ▶대남부문에서는 공개적인 비난 강도가 전보다는 떨어졌다. ‘자주’와 ‘외세배격’ 등의 기조는 변하지 않았지만 보안법 철폐, 국정원 해체, 연방제 통일 등 직접적 언급을 자제했으며 미국과 일본 등 이른바 ‘제국주의’에 대한 비난도 원론적인 수준에 머물렀다. ▶이런 ‘변화’를 두고 우리 정부 일각에선 벌써부터 이것이 우리의 포용정책 덕택(?)인 듯이 기대감을 갖는 경향이 있는 것 같다. 올해엔 민간교류가 활성화되는 것은 물론, 당국간 대화도 잘하면 이뤄질 것이 아니냐는 성급한 기대까지도 하고 있는 듯 하다. 그래서 ‘정상회담’ 운운의 이야기가 나오는 모양이나 실체적인 근거가 없는 희망적인 얘기들은 이제 앞당겨 꺼내지 않았으면 한다. 새 세기에는 우리의 대북자세도 좀 달라져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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