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주민들은 자기가 사는 지역을 벗어나려면 기차를 타야 한다. 기차이외에는 여행수단이 전혀 없기 때문에, 철도는 없어서는 안될 매우 중요한 운송 수단이다. 버스는 주로 시내나 군내에서만 운영이 되고 있다. 남한의 고속버스처럼 타지역까지 운행되는 버스는 전혀 없다. 또 대부분의 버스는 기차역까지의 운행이 전부이다. 기차 이외의 수단으로는 드물기는 하지만 트럭이 이용되기도 한다. 이런 경우 자동차(트럭)운전사와의 개별접촉을 통해 뇌물을 주고 화물칸을 이용한다.
◇사진설명: 출구가 따로 없는 일반기차

◆ 유일한 여행 수단인 기차

이처럼 기차 이외에는 다른 여행수단을 갖고 있지 못하기 때문에 북한의 철도는 과부하 상태이다. 북한 당국은 1970년대부터 여행증제도를 줄곧 시행해 오면서 승객 수를 조절하고 있어 마비상태를 가까스로 면하여 왔다. 이마저도 1985년 이후부터 시작된 식량난으로 인해 타지로 식량을 구하러 나서는 주민들이 기하급수적으로 늘면서 기차는 늘 거의 마비상태일 정도로 만원이다.


◇사진설명: 간부용 급행열차

평양-두만강(특급1열차), 평양-신의주(특급3열차) 등 특권층만 타고 다니는 몇 개의 특급열차를 제외한 거의 모든 열차는 승객들로 넘쳐나고 있다. 그리하여 많은 사람들로 붐비면서 승강장이 따로 없을 정도이다. 창문을 부수고 기차에 오르내리다 보니 어디가 승강장이고 창문인지 분간이 안 된다. 승객들은 아예 승강장을 막아놓고 더이상 다른사람들이 못타게 한다. 그러나 못 탄 사람들은 창문을 깨고 열차 안으로 들어 가려고 하는데 이렇게 되면 승강장의 승객과 대판 싸움이 벌어진다. 일본의 재일 교포가 몰래 찍어온 사진을 보면 평양역에 정차한 기차의 유리창이 거의 깨져있었다.

기차 안이 붐비는 또 다른 이유는 승객들이 보통 자기몸무게 만한 식량배낭을 2~3개씩 지고 있기 때문이다. 곡식배낭 때문에 무게를 이기지 못해 짐대가 무너져 밑에 있던 승객들이 다치는 사고도 빈번하게 일어난다.

◆ 붐비는 기차 안의 일상

열차 안에는 승객들의 여행증을 검사하면서 막강한(?) 권한을 가지는 열차안전원이 있다. 이들을 피해서 활동(?)하는 많은 꽃제비들도 있다. 어린 꽃제비들은 구걸을 하고, 나이가 좀 들면 소매치기가 되는 경우가 많다. 때때로 이들은 강도로 돌변하기도 한다. 꽃제비들이 식량난 이전에는 안전원의 엄격한 단속으로 열차에 감히 오를 생각도 못했다. 그러나 식량난으로 열차 안이 인산인해를 이루게 되자 꽃제비들이 살판 만난 것이다. 사람이 너무 많아 몸을 움직일 수가 없어 선 채로 용변을 보는 일까지 발생하는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1995년부터는 열차시간표가 무색해질 정도로 열차운행이 완전히 마비되었다. 전력 난으로 달리던 기차가 멈추었으며 아무리 늦어도 24시간이면 가던 평양-온성행 열차가 1주일만에 목적지에 도착했다고 최근 북한을 떠난 탈북자들이 증언하고 있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사회안전원의 단속은 예전 같지 않고 꽃제비들이 먹을 것을 찾아 열차에 대거 오르면서 아수라장이 된 것이다. 열차 안이 넘치다 못해 달리는 열차 지붕 위에 까지 올라 타는 사람들이 있는데 이들 중에는감전되거나 떨어져 죽는 사람도 꽤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긴 터널을 통과하거나 전기가 부족해서 불이 꺼지는 순간, 밤이 깊어 사람들이 졸기 시작하면 꽃제비들은 몇 명씩 짝을 지어 면도칼 등을 이용해 배낭 끈을 끊고 물건을 훔쳐간다. 이들 대부분은 ‘잡혀봐야 맞아 죽기밖에 더하겠냐’는 배짱으로 덤비기 때문에 누구도 이들을 막을 수가 없다. 열차를 타고 있는 대분분 승객들은 이들 때문에 항상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다.

열차 안전원들은 꽃제비들을 잡기만 하면 구석에 몰아넣고 사정없이 구타를 한 후 큰 역마다 있는 집결소(강제노동소)에 보낸다. 때문에 꽃제비들은 막다른 골목에 몰릴 경우 열차안전원도 살해해서 기차 밖으로 던져 버린다.

일반주민들의 열차안전원에 대한 인식은 매우 좋지 않다. 이들은 북한에서 가장 노골적으로 뇌물을 뜯을 수 있는 위치에 있기 때문이다. 속된말로 ‘노른자위에 있다’고 할 수 있다. 1년만 열차안전원을 하면 평생 먹고 살만큼의 재물을 모을 수있다고 할 정도다. 안전원들은 열차 안을 대충 훑고 지나다니지만 어느 배낭엔 뭐가 있겠다 하는 것을 거의 동물적 직감으로 맞춘다고 한다. ‘털어서 먼지 안나오는 사람 없다’라는 말이 있듯이, 이들은 자신이 원하는 것을 가지고 있는 사람을 발견할 경우, 이런 짐을 가진 사람들을 트집을 잡아 집중단속해서 물건들을 상납 받고 있다.

일부 장사꾼들은 열차 안전원들과 처음부터 결탁해서 여행증도 없이 전국을 다니면서 장사를 하는 경우도 있다. 따라서 북한에서 가장 부패한 곳 중에 하나가 열차안전원일 것이다.

◆ 무수한 소식들이 오고가는 열차

그래도 북한의 기차는 그래도 북한 주민들의 삶의 애환을 담고 달린다. 북한 주민들은 처음 만나는 사람과도 스스럼없이 이야기하며 가지고 다니는 술을 서로 내놓고 주패(카드놀이)를 즐기기도 한다.

새로운 소식에 목말라하는 북한주민들에게는 열차만큼 새소식을 전해주는 수단이 없다.
북한의 기차는 각 지방에서 몰려드는 승객들이 북한전역에서 일어났던 소식들을 서로 전하는 언론매체의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다. 평양-두만강, 평양-무산, 평양-신의주 열차가 한번 왔다 갔다 하면 감춰진 소식들이 전국에 퍼져나간다. 열차에서 퍼지는 소식들은 사람들이 거의 신뢰하는 편이다. 기차 안에서는 서로 신분이 확인되지 않기 때문에 자기 본심을 터놓고 말하기 때문이다.

평소에 북한주민들은 항상 보위원이나 그 첩자들의 그물망 같은 감시 속에서 하고 싶은 이야기를 마음대로 할 수 없다. 그러나 열차에 오르면 상황이 달라진다. 열차 안에 보위원이 타는 경우도 있는데, 이럴 때 걸리는 사람은 운이 더럽게도 없는 사람이다. 때문에 대부분의 주민들은 열차 안에서 이야기를 나눌 때 서로의 신분에 대해 묻지 않는다. 웬만하면 이름도 가명을 쓴다. 내 이야기를 듣는 사람이 혹시 보위원일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이렇듯 북한의 기차는 북한주민의 유일한 운송수단이며 하루동안 있었던 전국의 사건들이 기차를 통해 다음날 전국으로 전해진다. 실정이 이러하니 기차야말로 북한의 진정한 언론매체라고 북한주민들은 생각한다.

동해안을 따라 달리는 열차를 타고 가노라면 아름다운 동해바다와 어울러진 멋진 풍경들이 수없이 지나간다. 짜증스러운 열차여행에도 이러한 풍경은 그나마 사람들의 마음을 달래준다. 하루 빨리 통일이 되어 남쪽사람들도 아름다운 북녘의 동해바다 풍경을 보게될 날이 왔으면 한다./ 강철환 기자 nkch@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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