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설명: 북한에서 생산되는 여러 종류의 고급 술들.

추운 지방 사람들이 대체적으로 술을 좋아하는 것은 이미 알려진 사실이다. 따라서 남한사람보다 북한사람들이 술을 더 좋아한다는 것은 쉽게 짐작할 수 있다. 특히 함경북도에 가까운 지방일수록 추운 지방답게 독한 술을 즐긴다.

대부분의 북한사람들은 술을 좋아한다. 탈북자들 대부분이 남한에 와서 처음에 놀랍기도 하고 기뻤던 것은 받는 월급에 비해 술값이 싸다는 것이었다. 게다가 술 먹고 싶으면 언제든지 술을 먹을 수 있겠다는 생각에 기분이 좋아진다. 그런데 술도 너무 자주 먹다보니, 만족감이랄까 그런 게 점점 줄어드는 느낌이다. 북한에서 어쩌다 힘들게 구해먹는 술은 그 맛을 그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다. 가끔씩 북한에서 어렵게 마련한 술을 친구들과 마시던 때가 떠오르기도 한다.

북에서는 밀주가 한 병에 10원 정도 한다. 보통 노동자들의 한 달 월급이 100원 안팎이기 때문에, 한 달 월급으로 살 수 있는 술이 10병밖에는 안 된다. 1995년 이후부터 식량난이 급격히 안 좋아지면서 술값도 천장부지로 올라 웬만한 사람들은 술마시기도 힘들어 졌다. 북한에서는 술이 아주 귀합니다. 그래서 돈을 가지고 술을 사먹을 수 없는 술꾼들은 도토리나 옥수수를 모았다가 밀주를 만든다.

원래 개인집에서는 술을 못 만들게 되어 있다. 사회안전원(경찰)들이 밀주를 담그는 집들을 불시에 검문해 만든 술은 물론 도구까지 몰수하는 경우가 간혹 있다. 그러나 그들도 역시나 술을 좋아하고, 밀주가 없으면 평상시에 술을 먹기 힘든 상황인 것을 잘 알기에, 적당히 뇌물을 받으면 그냥 넘어가기 일쑤다. 밀주는 법적으로는 금지되어 있지만 북한의 거의 모든 주민들이 밀주를 즐기는 형편이라, 밀주제조자들에 대한 단속은 거의 손을 놓은 상태이다.

북한사람들이 술을 아무리 좋아한다고 해도 자주 마실 수는 없는 일이다. 친구 중에 한 명이 술을 구하면 다른 친구들은 안주를 구하기 위해 강에 가서 낚시를 하여 물고기를 잡든지, 야밤에 이웃집 닭장이나 토끼장을 털기도 한다. 이런 것들이 여의치 않으면 김치를 안주 삼아 술을 마시는 수밖에 없다. 고기안주로 술을 먹게되는 날은 운이 좋은 날이라고 할 수 있다. 대부분 안주 없이 김치만 놓고 술을 마시곤 한다. 북한에서도 이를 '깡소주’먹는다고 한다.

사실 남한의 음주문화는 탈북자들이 보기에는 상당히 과격(?)해 보인다. 북에서는 술잔을 완전히 비우지 않아도 술을 부어주는데, 남한에서는 술잔을 깨끗이 비워야만 술을 부어준다. 그리고 자기가 먹던 술잔을 다른 사람에게 넘겨주는 것은 처음에는 잘 이해하기 힘들다.

북한에서는 잔을 돌리지 않기 때문이다. 자기가 입을 댔던 술잔을 다른 사람에게 준다는 것이 비위생적이지 않나 생각되기도 한다. 그렇지만 로마에 가면 로마법을 따르라고 하니 이 땅에서 살려면 그렇게 하는 수밖에는 없을 것이다. 그렇지만 오랜 기간동안 서로 다른 음주관습을 가지고 살아온 탈북자들에게는 술잔을 돌리는 것이 그다지 좋은 습관은 아닌 것은 사실이다.

북한에 폭탄주는 없다. 서울에 와서 술 먹고 집에 가려고 하는데 2차 가자, 3차 가자면서 엄청나게 술을 먹었던 기억이 있다. 일단 술을 먹으면 뿌리뽑힐 때까지 먹는 남한사람들의 음주습관은 확실히 북한을 압도한다.

그러나 소주를 먹을 때 남한사람들은 작은 잔에 먹지만 북한사람들은 큰 컵이나 사발로 들여 마신다. 조그만 잔에 마시면 째째하다고 생각한다. 김정일이 술 잘 먹는 사람이 통 큰 사람이라고 했다는 근거 없는 소문까지 돌아 술자리에서 한 컵씩 따른 첫잔은 완전히 비우는 것이 유행하기도 했다. 북한에서는 대개 첫잔을 부딪치면서 '쭉 내자!'라고 한다. '다 비우자'라는 뜻이다. '건배!'라고 하기도 한다. 남한에서 흔히 쓰는 '~위하여!'라는 말은 없다.

남한에서는 젊은 여성들이 술에 만취하여 비틀거리는 모습을 종종 볼 수 있지만, 북한에서 여성들은 한두잔의 술을 먹을 뿐 취하도록 마시는 경우는 매우 드물다. 북한에서 길거리에서 술취해 비틀거리는 젊은 여자가 있다면, 그 다음날로 온 동네에 미쳤거나 제정신이 아닌 것으로 소문나서 얼굴을 들고 다닐 수가 없을 것이다.

북에도 술종류는 상당히 다양한 편이다. 일반서민들이 먹는 술은 집에서 담그는 밀주(소주)로 보통 10원 정도 하지만, 공장에서 출하되는 상품화된 술은 보통 20원정도(알코올 도수 25도기준) 한다. 독한 술을 좋아하는 북한사람들의 특성 때문에 알코올 도수가 10도 올라갈 때마다 10원씩 비싸진다. 가령 알코올 도수 30도의 술은 30원, 60도는 60원 하는 식이다.

‘양덕 맹산 흐르는 물은 산굽이 돌아?’라는 북한 노래구절에 있듯이 양덕, 맹산의 깊은 산 샘물로 만든 '덕천술’, '양덕술’은 일제시대부터 유명한 술이다. 확실히 다른 지방 술보다는 맛이 뛰어난다.

이 밖에도 인삼 술이라든가 들쭉술, 뱀술은 북한에서도 유명한 술이다. 특히 뱀술은 당간부용이나 해외수출용으로 특별히 제작하는 건강술이다. 그래서 뇌물로 이러한 술들이 많이 이용된다. 그리고 결혼식과 같은 집안의 중요행사가 있으면 이러한 술들이 고급술로 잔칫상에 오르기도 한다.

중국에서 들어오는 알코올 도수 60도의 빠이주(白酒)와 러시아 보드카(알코올 도수 70~80도)는 북에서 가장 인기가 좋고 비싼 술이다. 마실 때 목구멍에 불이 붙을 정도로 독하다. 특권층은 나폴레옹이나 헤네시 같은 일반주민들은 듣도 보도 못한 술을 먹는다고 하지만 그것은 김정일과 최측근의 특권층에 한에서이다.

북한의 주요명절에는 술이 배급된다. 김일성, 김정일 생일에는 술 먹고 비틀거리거나 술 취해 싸우다 걸리면 정치적으로 문제가 생긴다. 그러나 설날이나 민속명절에는 술 먹고 길바닥에서 흔들거리거나 서로 싸우는 광경을 많이 목격할 수 있다. 이런 날에는 안전원(경찰)들도 관대하게 대해준다.

술은 북한에서 거의 화폐 역할을 하고 있다. 술이면 어디 가서 안 통하는 곳이 없기 때문이다. 계획경제로 된 북한경제체제이지만 공장가동이 제대로 되지 않고 공급받게된 물자를 받으러 상급공장에 가면 이 핑계 저 핑계 대면서 잘 해결해주지 않는다. 그러나 준비해간 술통을 내놓으면 바로 그 자리에서 해결된다. 화폐는 뇌물로 간주되기 쉽지만 술은 별로 뇌물로 생각하지 않는다. 그래서 여행갈 때나 무슨 문제가 있어 부탁하러 갈 때는 술이나 고급 담배를 제공하면 웬만한 문제는 손쉽게 해결된다.

과거에는 술 때문에 정치범으로 잡혀간 사람들이 정말 많았다. 주위 친구들이나 아는 사람들이 술 먹고 정치적인 발언을 해 보위부에 끌려가 행방불명되는 사례가 많았다. 그것을 뼈저리게 겪어온 북한사람들은 아무리 술 먹고 취해도 아주 친한 친구들 외에는 정치적인 이야기를 하지 않는다.

술자리에서는 남자들은 주로 여자 이야기를 한다. 음담패설은 오히려 남쪽보다 더 심하다. 왜냐하면 그런 이야기가 가장 안전한(?) 이야기 거리가 되기 때문이다.

남한과는 달리 북한에서는 음주단속이라는 것 자체가 없다. 승용차를 가지고 다닐 정도의 사람들은 특권층이고, 다니는 자동차는 몇 대 되지도 않기 때문에 음주단속이라는 것 자체가 필요 없기 때문이다. 물론 술 먹고 운전하게 되어 있지는 않다. 그렇지만 상당수 운전사들이 술 먹고 운전하기도 한다. 안전원들이나 일반주민들은 음주운전에 대해 남한만큼 심각하게 여기지 않는다.

술 먹고 취해 길가를 헤매는 것은 남한이나 북한이나 위험하기는 마찬가지인 것 같다. 남한에서도 취객들을 상대로 금품을 털어 가는 일이 종종 있다. 북에서는 이런 일은 아주 보편화 되어있다. 술 안먹고 멀쩡히 있어도 털리는 판인데 술 먹고 취한 사람들은 무조건 표적의 대상이 된다. 조금 옷을 잘입은 사람은 술이 깨어보면 속옷만 남겨놓고 홀랑 털린다.

술에 얽힌 재미있는 실화가 있다. 함흥-영광간 통근열차에서 일어났던 일이다. '개 동생’이라는 별명을 가진 한 젊은이의 이야기이다. 영광군에서 일하는 청년돌격대원들이 김일성 생일을 맞아 모처럼 술 파티를 열었다. 오랜만에 강에 가서 물고기도 잡고 소주를 어렵사리 구했다. 술 마실 기회가 흔치 않은지라, 젊은이들은 정신없이 술을 마셨다. 파티가 끝나고 통근열차가 마감시간이 되어 친구들이 술 취한 친구들을 부축이며 열차에 올랐다.

북한의 기차에는 유리창이 거의 없어 시원한 바람이 그대로 기차 안으로 들어온다. 술에 취했을 때 갑자기 찬바람을 쐬면 더 취하게 되는 모양이다. 한 친구가 갑자기 속이 울렁거려 쓰고 있던 모자를 벗어 거기다 먹은 것을 토하기 시작했다. 취할 대로 취한 그 친구는 토할 것을 다 토해낸 모자를 들고 기차에서 내렸다.

그런데 술에 만취된 그 친구는 모자에 무엇이 들어있는 줄도 모르고 모자를 뒤집어썼다. 그러자 옆에서 부축하고 있던 친구들이 '악’소리를 내며 모두 도망갔다. 그는 토한 것을 머리에 뒤집어 쓴 채 혼자 길바닥에 쓰러졌다. 그러자 온 동네 개들이 모여들기 시작했다. 개들이 싸우는 소리가 온 동네가 떠나갈듯 하더니 가장 힘이 센 개가 얼굴에 묻은 것을 핥아먹기 시작했다. 그러자 취해서 넘어진 와중에서도 누군가가 자기를 돌봐주는 것으로 착각한 그는 그 개에게 "형님 고맙습니다."라고 계속 연신 고맙다는 소리를 했다. 결국 개들에 의해서 그는 깔끔하게 닦아졌다. 그 다음부터 그에게 '개동생’이라는 별명이 붙게 되었다.

사람이 살아가는 모습은 남이나 북이나 비슷해 보인다. 북한이 독재사회이기는 하나 평범한 일반사람들이 술 먹고 놀고 하는 것은 남한과 비슷하다. 단지 오랜 기간의 단절로 문화의 차이가 날 뿐이다. 술 마시는 분위기라든지 주법 같은 것은 남과 북이 많이 다른 것 같다. 통일이 되었을 때 이런 사소한 문제로 기분이 상하거나 좋지 않은 감정을 가질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 사소한 것이지만 북녘동포들이 달라진 풍습을 먼저 이해하는 것이 서로를 이해하고 화합하는데 도움이 되지 않을까 생각된다.
/ 강철환 기자 nkch@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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