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북 간 접촉과 교류가 활발해질수록 군사분계선과 비무장지대의 관리를 어떻게 해나갈 것인지가 관건으로 등장하게 된다.

엊그제 남북 간에 합의·발효된 ‘동·서해지구 남북관리구역 임시도로 통행의 군사적 보장을 위한 잠정합의서’는 이 문제에 대한 원칙적이고 합리적인 해결방안을 마련했다는 점에서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잠정합의서는 경의선과 동해선의 임시도로 연결공사를 위한 사람과 자재의 군사분계선 통과 문제를 ‘정전협정에 따라 협의·처리한다’고 규정함으로써 어떤 경우에도 정전협정이 준수돼야 한다는 원칙을 분명히 했다.

그러면서도 실질적으로는 판문점에서처럼 남북 간 직접 통보로 통행문제를 처리하는 간편한 절차를 적용함으로써 군사분계선이 남북협력의 장애가 되지 않도록 했다.

북한은 그동안 정전위원회를 거부하고 자의적으로 ‘인민군 판문점대표부’를 설치하는 등 꾸준히 정전협정의 무력화를 시도하면서 한국을 배제한 미국과의 평화협정 체결을 주장해왔다.

이번에도 북한은 군인이든 민간인이든 군사분계선을 통과할 경우 반드시 정전위원회의 허가를 받아야 한다는 정전협정(1조7항)의 적용을 배제함으로써 정전체제와 주한유엔사(司)의 권능을 약화시키려는 태도를 보였다. 우리 당국이 끝까지 원칙을 지키면서 북한을 설득시킨 것은 최근 남북협상에서 보기 드문 사례였다.

앞으로 경의선 연결 본공사 등을 비롯해 남북 간에 군사분계선을 오가는 교류 협력 사업이 활기를 띨 가능성이 높다. 그렇다고 해서 남북 간 전쟁을 방지하고 평화를 유지하기 위한 핵심장치인 정전협정이 다른 제도적 틀이 마련되기 전에 허물어져서는 안 될 일이다.

다만 남북 간 신뢰가 축적되는 데따라 정전협정의 규정을 융통성 있게 적용하는 현실감각은 살려 나갈 필요가 있을 것이다. 이번에 하나의 좋은 모델을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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