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부에서 한국을 볼때 가장 이해하기 힘든 것이 국민감정이다. 보통 때는 예의바르지만 어느 순간 갑자기 사람이 변한 듯이 불같이 화를 내는 경우가 있다.

최근 현대나 대우의 노동쟁의를 보면 60~70년대 일본의 안보투쟁 시대와 별 차이 없다. 투석이 난무하고 차량이 파괴되는가 하면 경찰이 노동자에게 구타당하는 광경도 전 세계에 방영되고 있다.

한국의 노동조합은 많은 경우 “참다 못해 인내심이 한계에 달했다”고 말하고는 한다. 급여 수준과는 별로 관계없는 듯 하다. 한번 험악해지면 경영자나 제3의 조정자가 가도 대화 자체가 제대로 성립되질 않는다. 한국의 노사분쟁을 지켜보면 왜 분노가 폭발하기 전에 대화와 협상을 하지않는가 하는 생각이 들곤 한다.

과거엔 북한의 영향을 받은 세력이 선동한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었지만 남북화합의 오늘날엔 설마 그렇지 않을 것이다. 누가 선동하든지 간에 한국에 격렬하고 무서운 노동운동이 존재하는 것은 사실이다. 그래서 재벌은 서로 경쟁하듯 공장을 해외로 내보낸다. 중국은 물론 사람이 별로 가지 않는 미얀마 오지까지, 동유럽에서 중남미까지 공장을 세우고 있다.

과거엔 우수한 노동자가 좋은 제품을 만들어 수출하는 것이 한국의 성공 패턴이었다. 지금은 많은 경영자가 입 밖에 내고 말하진 않지만 속 마음으론 노동쟁의가 무서워 해외진출을 한다고 생각한다. 즉 한국의 제조업은 공동화(공동화)되고 있다.

IMF(국제통화기금)의 개입 이후 재벌해체와 시장개방이 진전돼 외국계 기업에도 한국에 대한 문호가 개방됐다. 그러나 대부분 경우는 생각만큼 외자(외자)가 진출해 들어오지 않았다. 기껏해야 회계사무소나 투자은행 같은 ‘해체 청부인’이나 헤지펀드가 들어온 데 지나지 않는다.

이유는 간단하다. 한국 경영자와도 대화가 잘 통하지 않는 노동조합이 있는 회사를 인수해 경영하고 싶어하는 사람은 없기 때문이다. 팔려고 내놓은 한국의 회사는 비록 공짜라고 해도 비싼 셈이다. 설령 회사가 살아나기라도 하면 한국 관리들이 한국기업에 유리한 법률을 만들고 규제하는 것이 지금까지의 통례였다.

한국에 사업을 전개해 잘 되고 있는 일본기업은 거의 없다. 세계 각지에서 펄펄 날고 있는 마쓰시타나 소니나 야마하도 한국에선 실패해 공장을 폐쇄하고 말았다. 그러니까 시장을 개방해도 과거의 한국을 공부하지 않은 구미기업은 잘 모르고 들어 오지만, 한국을 잘 아는 사람은 누구도 오지 않는 것이다.

나는 2년 전 일본잡지에 “한국에서 재벌을 빼면 무엇이 남는가”라고 했는데, 문제는 점점 심각해지고 있다. 3년전엔 IMF와 미국이 한국경제를 구해줄 것이라고 생각했던 사람이 많았을 것이다.

2년 전엔 김대중 대통령이 조지 소로스의 조언을 받아 국제금융기관이 도와줄 것이라고 기대하지는 않았을까. 1년 전엔 재벌 해체가 진전돼 코스닥이 뛰고 원화 가치도 원상 회복해 한국은 ‘기적의 회복’을 달성했다고 생각했을 것이 틀림없다.

하지만 위기에서 3년이 지난 지금에도 결국 문제는 그대로이고, 어느 누구도 도와주지 않았다는 점을 한국인이 생각해주길 바란다. 왜냐하면 지금 벌어지고 있는 한국경제의 악순환의 본질은 세계에서도 예가 없는 국민감정과 집단 히스테리 현상에 뿌리박고 있다고 나는 생각하기 때문이다.

이런 문제가 존재하는 한 한국엔 세계에서 사람과 돈과 기술과 기업이 들어오지 않는다. 해결법은 오로지 한국인이 자기 내부에 존재하는 문제의 뿌리를 찾아내 끈기있게 제거해나가는 방법뿐이다. 이번엔 ‘급속한 회복’이 아닌 ‘장기전’을 각오하지 않으면 안된다.

오마에 겐이치 /미UCLA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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