金昌基
/국제부장 changkim@chosun.com

과연 얼마나 믿어야 할지 모르겠다. 여론조사 결과, 북한이 핵무기를 가져도 괜찮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안 된다고 하는 사람보다 더 많다는 것이다.

‘북한이 핵무기 가지면 어떠냐’는 생각의 근거는 크게 두 가지 정도로 보인다. 하나는 핵무기를 강대국의 상징으로 여기고, 우리 남한은 못가질지언정 북한이라도 그렇게 해서 강대국 반열에 낀다면 기분 나쁠 것 없지 않느냐는 소박한 견해다. 이런 생각은 핵무기의 군사적·전략적 위협에 관한 인식이 낮고 오히려 막연한 동경(憧憬) 대상으로 여긴다는 점에서, 심각한 우려의 대상으로 삼기보다는 차라리 논외로 치는 게 적절할지 모른다.

다른 하나는, 핵무기가 엄청나게 위험한 줄은 알지만 설마 남한을 겨냥한 것은 아니지 않겠느냐는 대책없는 낙관론이다. 남한을 겨냥한 게 아니라면, 그럼 누구를 겨냥한 것이란 말인가. 미국인가, 일본인가.

만일 북한이 미국을 겨냥하고 있다면 미국이 가만 있을 리 없다. 북한은 마음만 먹으면 실제로 핵폭탄을 미국 땅에 떨어뜨릴 수 있는 수단, 즉 미사일도 열심히 개발하고 있고, 테러 지원 전력(前歷)도 엄청나다.

그러니까 미국은 북한의 핵무기 획득을 어떻게든 막으려 하고, 도저히 안 될 때는 그냥 두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 북한은 미국이 북한을 침공하려 한다고 말하지만, 스스로 그 위험을 초래하고 있다. 북한의 핵개발 때문에 전쟁이 나면 남한은 애꿎게 엄청난 피해를 보게 될 것이다.

북한이 핵을 가지면 일본 역시 가만 있을 리 없다. 일본은 이미 마음만 먹으면 불과 몇 달 안에 핵무기를 제조할 수 있는 원료(플루토늄)와 기술과 자본을 다 갖고 있다는 것이 세계적으로 공인된 상태다. 옛날 왜구(倭寇)의 침략으로부터 임진왜란·정유재란을 거쳐 일제 식민지까지 겪은 우리가, 일본의 군국주의 부활을 우려하는 마당에 핵무장 빌미까지 줘서는 안 된다.

북한 핵무기는 남한을 포함해 누구를 공격하려는 것이 아니라 순전히 방어용일 것이라는, 천진난만하고 너그러운 견해도 있을 수 있다. 이것은 ‘미국의 핵 공격에 대비해 자위(自衛)수단으로 핵무기를 개발한다’는 북한의 논리를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이다. 하지만 권총에서부터 탱크와 미사일, 전투기와 함정에 이르기까지 모든 무기는 기본적으로 방어용이자 공격용이므로, 말장난에 불과하다. 원래 무기 자체에는 ‘의도’가 없다. 설령 ‘안 쓴다’ 하고서 만든 무기라 하더라도 누구든 마음만 바꾸면 쓸 수 있는 법이다.

북한이 핵무기를 만든들 설마 무슨 일이 일어나겠느냐는 생각이 다수라면, 국민 안보의식은 놀랄 만큼 해이해진 것이고, 이는 지난 5년간 집권한 현 정부의 책임이 크다. 맹목적인 남북 대결의식의 조장은 피해야 하지만, 나 자신의 안전은 지키는 게 기본이라는 생각을 허물어뜨려서는 안 된다.

그런데 지금도 정부는 북한의 핵개발에 대해 도대체 분명한 반대를 하고 있기나 한지 의심스러울 정도다. 몇 마디 공식 발언이 없지는 않았지만 마지못해 기록용으로나 남기려는 정도로밖에 비치지 않는 것은, 적극적인 움직임이 없기 때문이다. 공영 TV들도 북한 핵개발의 위험성에 대해서는 거의 입을 다물고 있다시피 하다.

지금은 잊혀진 옛일이 됐지만, 1980년대만 해도 남한의 학생·재야시위에는 반드시 들어갔던 게 주한미군 핵무기 철수와 한반도 비핵화(非核化) 주장이었다. 그래서 미국은 1991년에 남한에서 모든 핵무기를 철거했고, 남북한은 함께 핵무기 개발을 포기한다는 ‘비핵화 공동선언’을 채택했다.

지금 북한이 핵무기 개발로 큰 위험을 초래하고 있는 마당에, 10여년 전 미군 핵 철수와 한반도 비핵화를 외쳤던 사람들은 다 무엇을 하고 있는지 궁금하다.

김영삼 정부는 ‘핵을 가진 자와는 악수할 수 없다’고 했다. 김대중 정부는 북한과 악수를 세게 했지만 북한은 핵개발로 나서고 있다. 새로 출범할 노무현 정부는 어떻게 할지 대응이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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