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위주의 정권들은 항상 말하곤 했다. 남북대화를 위해서는 국론통일이 필수적이고, 그렇기 때문에 ‘이런 소리’만 내야지 ‘저런 소리’를 내선 안된다고. 그래서 ‘저런 소리’를 내는 사람들에게는 재갈을 물렸고 그래도 말을 듣지 않으면 감옥에 처넣었다.

그렇게 당한 사람들 가운데는 물론 오늘의 대통령 김대중씨도 들어 있었다. 그런데 그 김 대통령이 이끄는 정권하에서도 한 대한민국 국민이 그와 비슷한 함구령을 받아왔다면 그것은 비극일까 희극일까? 황장엽씨의 성명에 의하면 그는 김대중 정권으로부터 “(북한을 자극할) 아무런 말도 하지 말라, 글도 발표하지 말라, 기자도 만나지 말라”는 요구를 받아왔다고 한다.

그렇다면 남북대화를 위해서는 ‘이런 소리’만 해야지 ‘저런 소리’를 해선 안된다고 하던 권위주의 정권하고 지금의 정권이 다른 점이 대체 무엇이란 말인가? 권위주의 정권의 함구령은 냉전논리를 위한 것이었기 때문에 몹쓸 시책이었지만, 황장엽씨에 대한 지금 정권의 함구 권유는 화해를 위한 것이기 때문에 ‘천사표’ 시책이라고 할지 모른다. 그리고 그렇기 때문에 그 둘을 같은 평면에서 동일시하는 것은 부당하다고 주장할 것이다. 그러나 그런 ‘천사표’ 정권이, 그래서 영광의 노벨 평화상까지 탔다는 김대중 정권이 한 중요한 탈북 망명자의 양심의 자유, 표현의 자유, 대외활동의 자유를 ‘정중하게(?) 저해한 것이 사실이라면 그것은 단연 세계적인 스캔들감이 아닐 수 없다.

북한의 테러로부터 황장엽씨의 생명을 지켜주기 위해, 어떻게 해서든 남북화해를 이룩하기 위해 그렇게 했다고 하지만, 황씨는 차라리 북녘의 테러에 당당히 희생당할지언정 온실 속 식물인간으로 구차스럽게 살고 싶지는 않을 것이다. 모든 특권을 포기하고 북한을 떠났을 때 그는 이미 일신의 안녕과 목숨을 내던졌다. 그는 그야말로 ‘밥 얻어먹으러’ 남한에 온 것이 아니었다. 그는 말하러 왔고 외치러 왔으며 증언하러 왔다. 그런데 그런 황씨를 ‘남북화해를 위해’ 재갈물리겠다니, 그렇다면 이 정권은 ‘남·북 지상(지상)주의’에 빠진 나머지 대한민국 헌법 기본권 조항의 일부를 황씨에 대해서는 그 효력을 정지시키려 했다는 이야기인가? 사실이라면 황씨는 김대중 정권의 위헌행위를 상대로 소송이라도 제기함직한 일이다.

보는 시각에 따라서는 황씨의 대북관 전체가 다 진선진미한 것만은 아닐 수도 있다. 그러나 그럴 경우라도 그 누가 이 대명천지에서 한 사람의 투철한 신념의 표출을 이런저런 핑계로 저지할 수 있다는 것인가?

‘남·북’은 절실한 과제다. 그러나 그것을 이유로 우리사회 분위기를 어느 한 쪽의 획일주의로 몰고가선 안된다. ‘이런 소리’ ‘저런 소리’가 다양하게 섞여있는 그 상태 그 모습을 고스란히 간직한 채 남북대화도 하고 교류도 하자는 것이 이 나라의 창설 이유이며 존재 이유이기 때문이다.

‘남·북’을 이유로 야당 지도자 김대중씨를 불순분자로 낙인찍었던 권위주의 정권, ‘남·북’을 이유로 황장엽씨를 ‘반(반)화해’라며 재갈물렸다는 김대중 정권, 도대체 뭐가 뭔지 알 수 없게 돌아가는 요즘이다.

북쪽으로 넘어간 유미영은 당당히 ‘단장’ 자격으로 서울에 오는데, 남쪽으로 넘어온 황장엽씨는 엄동설한에 살던 집에서마저 쫓겨날 판인 이상한 시대에 우리는 지금 살고 있다.

장충식 한적(한적) 총재가 월간잡지에 인터뷰한 별것도 아닌 내용이 북쪽의 심기를 건드렸다 하여 국민 모르게 살짝 사과편지(?)를 보내려다 들통난 그런 해괴한 시대에 우리는 살고 있는 것이다. 또 한차례 때가 가고 있다는 신호일까 때가 오고 있다는 신호일까?

/논설주간
저작권자 © 조선일보 동북아연구소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