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재 북한이 벌이고 있는 ‘핵(核)게임’은 성공확률이 제로에 가까운 위험천만한 도박에 불과하다. 최근 들어 북한 핵 도발의 단계와 수위가 날마다 높아지고 있다.

엊그제 영변 핵단지의 5MW급 원자로에 대한 봉인을 제거하고 감시카메라 작동을 중단시키더니 어제는 저수조에 보관된 폐( )연료봉 감시장비와 봉인에까지 손을 댔다.

8000여개의 폐연료봉은 재처리만 하면 언제든 핵폭탄 제조 물질인 플루토늄을 추출할 수 있기에 한·미 정부와 국제사회는 여기에 손대는 것을 ‘인내의 마지노선(線)’으로 간주해 왔다. 이제 북한의 의도는 분명해졌다. 핵 위기를 만들어 미국과 ‘큰 판’의 협상을 하고, 여기서 실익(實益)을 얻겠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 같은 ‘핵 도박’이 성공할 가능성은 거의 없다. 거꾸로 유엔 안보리를 통한 국제사회의 압력과 제재를 자초하는 것이다. 자칫하면 북한은 생존마저 위협받는 심각한 상황에 빠질 수도 있다. 북한 정권의 국제정세를 읽는 눈이나 대응전략이 수준 이하라는 사실을 새삼 확인시켜주는 대목이다.

북한의 살 길은 핵을 포기하고, 국제사회의 인정을 받는 것이다. 그런데 정반대로 핵위기를 조장하는 건 한마디로 ‘모두 죽자’는 식의 막가파식 협박일 뿐이다. 게다가 북한은 김대중 정부 등 국제사회의 지원이 계속되는 동안에도 몰래 핵을 개발해온 것으로 드러났다.

대체 어쩌자는 것인가? 지원은 지원대로 받으면서, 핵 공갈은 공갈대로 계속하는 철부지 같은 불장난으로 한반도 전체를 위기에 몰아넣겠다는 것인가?

북한의 연속 도발은 한국이 정권 이양기에 접어들었고, 미국도 온통 이라크문제에 매달려 있는 지금이야말로 협상의 적기(適期)라는 판단 때문일 것이다.

따라서 한·미 정부는 조속한 시일 안에 북한이 오판(誤判)한 것을 깨닫게 해야 한다. 이런 점에서 다소 이완된 듯한 인상을 주는 최근의 한·미 정부의 태도는 바람직하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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