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이 핵 동결을 약속한 94년 제네바 합의 이후에도 70차례 이상 핵(核)개발을 위한 고폭실험을 지속적으로 해온 사실이 드러났다. 이것은 북한이 이미 핵무기를 보유하고 있거나 최소한 개발 완료 단계에 들어갔다는 추정을 뒷받침하는 중요한 증거다. 이로써 북한이 제네바 합의 파기의 책임을 미국에 떠넘기고 있는 것은 전형적인 적반하장(賊反荷杖) 선전술임이 다시한번 분명해졌다.

북한이 수년간 비밀리에 핵무기 개발에 박차를 가해 온 사실은 최근의 농축 우라늄을 이용한 핵개발 프로그램 시인이나 핵시설 재가동 위협이 즉흥적인 위기 돌파 전술이 아니라 장기간의 치밀한 준비 끝에 나온 것임을 짐작케 한다. 그만큼 핵위기의 해법도 더 어려워질 가능성이 높아진 것이다.

북한의 이런 도발적 태도가 하나씩 드러날 때마다 국제사회의 대처는 더욱 단호해질 수밖에 없다. 미국의 보수 진영에서는 북한이 이라크보다 더 나쁜 정권이라는 식의 견해까지 나오기 시작했다. 이라크는 그나마 “핵무기가 없다”면서 사찰을 받고 있는 중이지만, 북한은 아예 드러내놓고 핵 위협을 가하고 있는 형국이기 때문에 이런 견해가 점차 확산될 여지도 적지 않다.

한국이 대선(大選) 소용돌이에 빠져 있는 동안 북핵 위기는 더 커져 왔다고 할 수 있다. 한·미간 본격적인 공조체제 구축작업은 선거 후로 미루어지는 양상이었고, 이 틈을 타 북한은 자신의 카드를 하나씩 꺼내며 위기를 고조시켜 왔다.

이제라도 현 정부는 북한의 핵개발 관련 정보들을 낱낱이 공개해 국민들의 경각심을 일깨우고 국제사회와의 공조를 통해 구체적인 해법 마련에 나서야 한다. 정권 교체기의 어수선함 때문에 이 일을 자칫 소홀히했다가는 걷잡을 수 없는 사태를 맞게 될지도 모른다. 이번 대선의 당선자도 무엇보다도 앞서 이 문제에 매달려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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