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경=지해범기자】 좀처럼 냉정함을 잃지 않는 중국의 외교 관계자들이 김정일(김정일) 북한 노동당 총비서의 5일 밤 평양주재 중국대사관 전격 방문에 흥분하고 있다. 그동안 중국과의 직접대화를 거부하던 북한의 최고 지도자가 자국 대사의 이임파티에 돌연 참석한 것은 물론, 저녁 7시부터 11시까지 4시간 동안 대사관 직원들과 어울리며 ‘깊은 대화(중국 외교관계자 표현)’를 나누었기 때문이다.

이번 방문의 정확한 의미는 김정일이 중국 대사관에서 무슨 말을 했는지 구체적으로 전해져야 정확히 밝혀질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너무나 이례적인 이번 방문에 대해 중국의 외교 전문가들은 앞으로 한반도 주변 정세에 급격한 변화를 예고할 ‘신호탄’이 쏘아올려졌다고 해석해야 한다는 말을 주저하지 않고 하고 있다.

이번 방문은 그러나 지난 92년 한·중수교로 소원해졌던 중·북간 전통적 우호관계의 완전 복원과 새로운 시대 양국관계의 재정립을 위한 ‘대사건’이라는 윤곽만은 뚜렷한 것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중국 외교전문가들은 김정일이 ‘강성대국화’를 향한 대외 개방정책에 착수한 것이 아닌가 보고 있다.

김정일이 ‘대외개방’ 정책의 첫번째 대상으로 중국을 택한 것은 최근 이루어지고 있는 대미(대미), 대일(대일) 관계개선 작업에 모두 중국의 지지와 협력이 필수적이며, 점진적인 개방노선을 채택하는 데도 중국의 지원은 중요하기 때문으로 분석된다.

중국과의 관계복원을 위해, 김정일 총비서는 직접 장쩌민(강택민) 국가주석에 보내는 ‘메시지’를 완 대사를 통해 전달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그 ‘메시지’속에는 이제까지 양국 실무자간에 논의돼 오던 자신의 방중(방중)문제와 양국 정상의 상호방문 및 정상회담에 대한 언급도 담겨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이 문제와 관련, 중국 소식통은 “양국 정상의 왕래와 회담의 기반이 모두 마련됐다”고 말해, 중국의 전인대(전인대)가 끝난 이달 말쯤부터는 김정일의 방중시기가 본격 논의될 것임을 시사했다. /hbjee@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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