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25 전쟁이 한창이던 지난 50년 11월 1일 해군에 자원 입대한 수병(해군19기)들이 31일 전쟁기념관에서 반세기 만의 감격적인 만남을 가졌다.

“원산항에서 함포 사격을 했던 동기들은 다 어디로 갔나?”

“뻘밭에 처박힌 함정을 세우기 위해 포탄을 날랐던 것 기억하나?”

반백의 70대 노신사들은 서로의 안부를 물으며 50년 전을 회고했다. 이들은 전쟁 직후 서울이 함락되자 인민군을 피해 숨어지내다 서울 수복 후 신병모집 광고를 보고 지원했던 중학생들이었다. 450여명의 동기들은 대부분 유명을 달리했고, 이날 32명이 모였다.

김태혁(김태혁·70) 동기 회장은 “서울 수복 후 워낙 정세가 급박했기 때문에 모두가 한마음으로 뭉쳤다”며 “훈련 도중 부산 경비작전에 동원되는 등 우여곡절을 겪었다”고 말했다. 이들 참전용사는 전쟁기념관에서 전시 중인 조선일보 주최 ‘아! 6·25전’을 관람했다. 북한 무장수송선을 격침시킨 백두산함(PC701)을 보고 격렬했던 전투를 떠올렸다.

당시 PC705호에 승조, 포술사로 함포사격을 주도했던 방윤규(방윤규·70)씨는 “원산항에서 임무교대를 하던 동료들이 눈에 선하다”며 안타까워했다. 손경환(손경환·69)씨는 “백령도 전투 중 북 함정의 포격을 받고 동료들이 바다에 떨어졌고, 나는 갑판에서 굴러떨어져 중상을 입고 겨우 살아났다”며 “지금까지 신경통약을 복용하고 있지만 당시 입원기록이 없어 보훈혜택을 받지 못하고 있다”고 하소연했다. 박종국(박종국·68)씨는 “연평도 앞에서 야간전투 중 썰물로 물이 다 빠져나가 갯벌에 처박히자 인민군들이 뻘밭으로 침투하는 것을 소총으로 저지했다”고 말했다.

이들은 당시 입영했던 신병교육대(현 해군교육사령부 기초군사학교)에서 교육받고 있는 신병(451기)들과 만남의 시간을 갖기 위해 이날 오후 진해항으로 떠났다. /정병선기자 bschung@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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