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반도에너지개발기구(KEDO)가 다음달부터 대북 중유(重油)공급을 중단키로 결정한 것은 대북 압박 조치의 첫단계라고 할 수 있다. 북한이 강경 대응을 할 경우 대북압박의 강도는 더 높아질 것이고, 자칫 본격적인 핵(核) 위기로 발전할 수도 있는 상황이다. 일단 대북 압박에 들어간 이상 한·미·일은 치밀한 계획 아래 북한 핵문제를 조기에 평화적으로 매듭지을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할 것이다.

여기서 가장 중요한 것은 튼튼한 한·미·일 공조다. 이번 중유중단 결정과정에서 드러난 일련의 혼선과 불협화음이 두 번 다시 되풀이 되어서는 안된다. 대북 국제공조에 균열의 조짐이 보이면 북한은 상황을 오판하게 될 것이고, 그렇게 되면 문제 해결은 계속 지연될 뿐이라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
이점에서 임기 말 김대중 정부의 처신이 중요하다. 이제는 인도적인 사항을 제외한 남북경협 등 대북사업을 ‘핵 뒤로’ 미루어야 한다. 개성공단이나 경의선 연결공사 같은 일들은 핵문제가 정리된 이후에 재개해도 결코 늦지 않고, 그렇게 하는 것이 순리다.

그러나 이보다 더 중요한 것은 북한의 선택이다. 만약 북한이 구태의연한 ‘벼랑 끝 전술’을 다시 들고나온다면 한반도는 적잖은 위기를 겪겠지만, 북한 지도부는 지금의 국제사회 분위기가 과거와는 전혀 다르다는 점을 직시해야 할 것이다. 부시 미국정부는 핵·미사일 같은 ‘대량살상무기(WMD)’ 확산을 결코 용납하지 않겠다는 입장이며, 또 북한식 위협에 물러서거나 양보할 의사도 없다.

북한 지도부가 위기조장형 핵게임으로 이득을 취할 수 있다고 본다면 이는 엄청난 착각이다. 오히려 그간 추진해온 경제개혁 조치 등을 모두 수포로 돌리는 파국적 결과를 가져올 것이다. 결국 북한이 취해야 할 선택은 핵을 포기하고, 부시 정부가 이미 제시한 바 있는 국제사회 진입을 향한 ‘과감한 접근(bold approach)’의 길을 따르는 것이다. 그것이 바로 민족을 우선시하는 태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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