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정부는 최근 한반도 상황 변화에 대한 ‘속도(속도)의 공포’가 가장 적다. 미국과 일본, 중국 등 한반도 주변 강국들과 비교할 때 가장 여유롭게 보인다. 한국은 최근 한반도 주변에 몰아친 변화의 주체이고, 그 진원지는 김대중(김대중) 대통령이다. 김 대통령이야말로 각본과 연출에 이르는 모든 과정을 지휘해 온 주인공이라 할 수 있다. 한국 정부는 변화의 방향과 방법론에 관한 ‘마스터 플랜’을 갖고 있다고 말한다.

한국 정부의 전략은 작년 1월 초 김 대통령이 처음 언급한 ‘한반도 냉전구조 해체론’으로 요약된다. 김 대통령은 작년 1월 4일 “한반도 냉전 구조의 해체를 위한 국제적 지지와 협력을 확보하기 위해 외교적 노력을 가일층 경주해야 한다”고 밝힌 바 있다.

임동원(임동원) 당시 청와대 외교안보수석(현 국가정보원장)은 그로부터 한 달쯤 뒤 한 강연에서 ‘냉전구조 해체’의 의미를 상세히 설명했다. ▲남북 불신·대결관계를 화해·협력관계로 바꾸고 ▲미·일의 대북(대북)관계 정상화 ▲북한이 개혁·개방으로 나올 수 있도록 환경과 여건 조성 ▲한반도에서 대량살상무기 제거 ▲정전협정체제를 평화체제로 바꾸어 ‘사실상의 통일 상황’ 실현 등이 강연의 핵심 내용들이다.

이 중 상당수가 남북정상회담과 미·북, 일·북 회담 등을 통해 현실에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 미·일과 북한의 관계 정상화를 권하는 한국의 입장은 결코 ‘외교적 수사’가 아니다. ‘한반도 냉전구조 해체’의 핵심 목표 중 하나이기 때문이다. 김 대통령은 98년 6월 취임 후 첫 미국 방문 때 대북(대북) 경제 제재 해제를 포함, 미 정부가 적극적으로 대북관계 개선에 나서라고 주문했다. 남북관계가 꽁꽁 얼어붙어 있는 상황인데도 미국의 대북관계 개선을 요구할 수 있었던 것은, 미·북관계 개선이 결국은 북한의 문을 여는 데 도움이 될 수밖에 없다는 판단 때문이었다. 최근 클린턴 미 대통령의 방북(방북)이 ‘가능한 현실’로 등장하면서, ‘미·북관계의 남북관계 추월’ 가능성이 거론되지만, 김 대통령의 대답은 “북·미관계가 잘 되는 것이 남북관계에도 도움이 된다”는 것이다.

지금까지 나타난 한국 정부의 태도만을 놓고 본다면, 한국은 결코 ‘북한’을 놓고 미·일과 중국 등 주변 강국과 ‘경쟁’할 의사가 없다. 각국의 대북 관계 개선에서 나타날 ‘긍정적 효과’가 결국은 남북관계로까지 넘어올 것이라고 믿고 있다.

지금 단계에서 한국 정부의 최대 목표는, 남·북한이 주도하고 미·중이 지원하는 ‘2+2’ 형식의 회담을 통해 정전체제를 평화체제로 바꾸어 ‘사실상의 통일 상황’을 실현하는 것이다. 한국 정부는 미·일·중 등 주변국들을 한반도 냉전 해체의 ‘적극 참여자’로 유도하고, 남북관계를 사실상의 통일 상태로까지 이끌고 가겠다는 ‘엄청난 실험’에 착수한 상태다.

문제는, 김 대통령의 실험은 김정일(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의 ‘협력’을 절대적으로 필요로 한다는 데 있다.

또 최근 나타난 북한의 태도는 따지고 보면 ‘북한의 근본적 변화를 막기 위한 전술적 변화에 불과하다’는 지적도 적지 않다. 그렇기에 성공을 선뜻 낙관하기만은 어려운 것이다.

/박두식기자 dspark@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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