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귀곤
/서울대 교수·남북철도·도로 환경공동조사단장

캄보디아 프놈펜에서는 아세안(동남아국가연합) 정상회의에 이어 11월 7일부터 9일까지 ‘아세안지역 생물다양성보전센터’와 유네스코의 공동주관으로 접경보전지역의 관리와 행동계획의 조화를 모색하는 워크숍이 열렸다. 캄보디아·라오스·미얀마·태국 등 동남아시아 접경지역의 보전지역과 몽골·중국·남한·북한·러시아 등이 참여하는 동북아 접경보전지역이 주대상으로 다뤄졌다. 여기에는 백두산과 DMZ도 함께 포함돼 있다.

접경보전지역이란 하나의 생태계지만 정치적으로 갈라진, 보전가치가 있는 생태계의 효율적인 관리를 위해 국경을 초월하여 지정되는 지역으로, ‘평화공원’ ‘우정의 공원’으로 불리기도 한다. 1992년에 채택된 의제21, 금년 9월 초 정부 간에 합의를 본 지속가능발전에 관한 세계정상회의(WSSD)의 이행계획, 생물다양성 협약, 그리고 유네스코 인간과 생물권프로그램 등은 접경보전지역의 지정을 통한, 경계를 초월하는 생태계 보전 노력을 권고하고 있다.

이번 회의에서는 DMZ가 갈등을 해소하고 평화와 안정, 통일에 기여하면서 보전협력을 하는 접경생물권보전지역으로의 지정 가능성이 높은 지역으로 평가되었다. DMZ 접경생물권보전지역의 지정이 국제적, 그리고 아세안 지역의 이슈가 되고 있는 가운데, DMZ 내에서 철도·도로 연결 사업이 진행되고 있어 보다 현실적인 대안으로 DMZ 철도·도로 연결구간을 우선 환경관리특별구역으로 지정해 공사 중은 물론, 공사 후에도 남북이 공동으로 환경을 관리해 나갈 것을 제안하고자 한다.

이 방법은 유네스코 집락(cluster) 생물권 보전지역 모형에도 부합되어 앞으로 있을 DMZ 전체에 걸친 생물권보전지역의 지정노력에도 도움을 줄 수 있기 때문이다.

비무장지대는 우리나라 자연환경보전법에 의거, ‘유보지역’으로 지정되어 있을 뿐, 국토이용계획이나 환경계획이 수립되어 있지 않다. 제안되는 특별구역의 지정을 통해 남북 공동생태조사의 실시, 공동관리계획 마련, 공사 후의 공동환경생태 모니터링과 같은 남북 환경사업을 수행해야 한다.

이 같은 사업은 현재 진행되는 철도·도로 연결사업지역을 대상으로 제한된 지역에서 시범적으로 추진한다는 점에서 전략적인 차원에서 DMZ 전체를 대상으로 하는 것보다 남북 간의 합의가 쉬울 것으로 전망된다.

경의선과 동해선 연결구간에 위치하고 있는 습지는 지난 50여년 동안에 형성돼온 것으로서 여러 가지 야생동물의 서식을 가능하게 해주는 귀중한 생태계다. 해당화 군락 등 희귀한 사구 식생들도 발견되고 있다. 이 같은 습지의 생태적 완전성을 도모하고, 다양하고 충분한 크기의 유전자풀(gene pool)을 유지해 나가기 위해서는 남북협력에 의한 공동관리가 필수적이다.

철도나 도로에 의해 수계나 사구가 단절되거나 서식처가 갈라지고 남측과 북측에서의 관리방법이 서로 다르게 되면, 국제적으로 인정받는 보전지역으로서의 자격을 상실하게 될 수도 있다. 따라서 더 늦기 전에 접경보전지역의 지정 문제가 남북협의의 의제로 이른 시일 내에 채택되어 남북 간에 논의되기를 기대해본다.

일찍이 미국과 구(舊)소련 간의 냉전시대에도 고르바초프와 부시 대통령 간에 접경보전지역의 지정에 관한 논의가 있었다고 전해지고 있다. WSSD에 제출된 ‘아세안보고서’에서도, 또한 접경공원을 많이 지정하겠다는 아세안 지역의 약속을 담고 있어 WSSD에 대한 국가 실천계획의 일환으로 DMZ 환경특구를 지정하는 것은 시의적절한 조치가 될 것이다.

모처럼 조성된 남북 경협 분위기가 성숙되어 환경협력으로까지 이어진다면 미래세대를 위한 현세대의 책무를 이행하는 현명한 길을 마련하지 않을까 생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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