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의 군사력이 남한을 지켜주고 있으니 남북이 함께 미국에 맞서야 한다’는 북한 조평통(祖平統)의 29일 성명은 하도 어이가 없어 피식 웃음이 날 지경이다.

그러나 도대체 북한 지도부가 지금의 핵(核)문제를 비롯한 한반도 정세에 대해 어떤 사고방식을 갖고 있기에 이런 가당찮은 말을 버젓이 내놓는지는 반드시 짚어 보아야 할 일이다. 그들의 정세 인식이 터무니없을수록 한반도 위기 상황은 깊어질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북한의 주장은 한마디로 한국이 미국과의 이른바 ‘외세 공조’를 버리고 자신들과의 ‘민족 공조’에 나서라는 것이다. 이는 “남조선 동포들도 우리 자위적 보호권 아래서 편안하게 지낼 수 있었다”면서 “북과 남이 다같이 미국으로부터 엄중한 침해와 위협을 받고 있으니 함께 민족의 자주권을 지키자”고 강변한 데서 분명해진다. 그러면서 “조선반도에서 전쟁이 터졌다면 남조선이 과연 어떻게 되었겠는가”라는 위협도 서슴지 않는다.

북한은 지난 4월 임동원 청와대 특보의 김정일 면담 때도 ‘민족 공조’를 강요하는 위압적 태도를 보였고, 작년 12월에는 ‘북한 무력 덕분에 한반도 전쟁을 피할 수 있기 때문에 남한이 북한을 돕는 것은 당연하다’(통일신보)고 주장했다.

북한의 어처구니없는 주장이 되풀이되고 있는 것은 이것이 선전선동 차원에서 한번 해보는 일과성이 아니라 나름대로의 상황 판단에 따른 대남 압박전략임을 보여준다고 할 수 있다.

‘민족’을 들먹이면서 갖가지 도발을 일삼다가 이제는 한국민을 ‘핵 인질’로 삼으려는 의도까지 노골화하면서 ‘민족 공조’ 운운하는 북한 지도부의 억지에는 참으로 고소를 금할 수 없다.

그러나 북쪽이 겨냥하고 있는 것이 한국 내의 일부 반미(反美) 감정과 막연한 ‘민족 우선’ 경향, 그리고 현 정부의 모호한 자세라는 사실은 유념해야 할 것이다. 이런 요소들이 북한 지도부의 상황 판단을 오도하고 있다면 그것을 바로잡아줄 우리의 단호한 의지 표명이 필요한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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