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3년 동안 북한의 핵개발 움직임을 포착했으면서도 이를 대통령에게 보고하지 않았다는 신건(辛建) 국정원장의 국회답변은 도저히 납득할 수 없는 궤변이다. 우선 국정원장이 국가안보와 직결된 북한 핵 관련 첩보를 자의(恣意)로 대통령이 몰라도 된다고 판단했다는 근거가 빈약하기 짝이 없다.

신 원장은 ‘초보적인 첩보 수준’이라 대통령에게 보고하지 않았다고 하지만, 국정원이 국회에 제출한 비공개 보고서에 따르면 한·미 정부는 99년 초부터 지금까지 무려 5차례나 북한의 우라늄 농축 핵개발 움직임을 포착해 이를 추적해왔다고 한다. 이처럼 중대한 사안을 대통령이 몰라도 된다면, 대통령이 알아야 하는 첩보는 대체 무엇이란 말인가?

만약 신 원장의 말이 사실이라면, 이는 스스로 직무유기 내지는 국가안보에 위해를 가한 셈이다. 최고 통수권자로서 국가안보에 관한 한 무한책임을 갖는 대통령이 국정원의 보고누락 때문에 북한 핵개발 움직임을 모른 채 대북사업을 추진해왔다는 이야기가 되기 때문이다. 신 원장이 북한 핵문제가 불거진 뒤 김대중 대통령에게 쏟아지는 안팎의 비난을 대신 뒤집어쓰기 위해 그 같은 말을 했다면 이는 국회법상 위증(僞證)죄를 저지른 것이다.

김 대통령 역시 대통령이라는 직위가 ‘몰랐다’고 해서 책임을 면할 수 있는 가벼운 자리가 아님을 명심해야 한다. 만약 북한 핵 움직임을 보고받지 못했다면, 이는 정보조직 운영과 장악에 심각한 문제가 있었다는 것을 만천하에 자백하는 것에 불과하다.

결국 이번 일을 둘러싼 국민적 의혹에 대한 국회차원의 조사가 이뤄져야 한다. 지난번 서해교전에 이어 이번 북한 핵까지, 국가안보와 직결되는 정보들이 정치적·당파적 입장에 따라 사장(死藏)되는 경우가 너무 빈발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같은 정보조직들의 환부(患部)를 그대로 방치할 경우 국가위기로 발전할 수도 있는 심각한 상황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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