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의 ‘낮은 단계 연방제’ 통일방안을 놓고 논쟁이 가열되고 있다. 북한은 지난 6일 ‘낮은 단계 연방제는 1민족, 1국가, 2제도, 2정부의 원칙에 기초하되 남북의 현 정부가 정치·군사·외교권을 그대로 보유한 채 민족통일기구를 구성하는 것이며, 연방국가 창립에 저촉되는 정치적·물리적 장벽을 제거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이것은 현존하는 남북정부의 권한을 그대로 둔다는 점에서 외형상 김 대통령의 ‘남북연합제’와 유사하게 보이지만 본질은 차이가 있다.

북한은 1960년 연방제를 처음 제기할 때, 남북한 정부가 독자적 활동을 견지하되 양 정부 대표로 구성되는 ‘최고민족위원회’를 조직, 남북한간 경제·문화 발전을 통일적으로 조절하자고 주장하였다. 북한은 1980년, 연방정부가 정치·국방·외교권을 관장하고 남북정부는 지역자치제를 실시하며 연방정부 국가수반은 남북 윤번제로 운영하자고 하면서 연방제 선결조건으로 국보법 폐지, 공산당의 자유활동 보장, 주한미군 철수 및 조·미협정 체결 등을 내세웠다. 북한은 1991년 잠정적으로 지역자치정부에 더 많은 권한을 부여하고 장차 중앙정부의 기능을 점진적으로 강화하는 방향에서 연방제 통일을 완성해 나가되 주요 국제문제는 연방정부와 지역정부가 협의·결정하자고 태도변화를 보였다.

북한이 주장하는 것은 1961년과 1991년의 연방제에 기초하고 있는 것으로서, 여기서 우리는 세 가지 사항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첫째, 1국가 2정부 원칙에서 출발하고 있기 때문에 ‘낮은 단계의 연방’이라는 2정부 차원에서 ‘높은 단계의 연방제’라는 1국가 체제로의 이행을 전제로 하고 있다는 점이다. 지난 40년 동안 북한의 연방제 변천 과정을 보면, 남북 체제경쟁에서 불리할 때는 체제 보존을 목적으로 느슨한 형태의 연방을 내놓았지만, 체제경쟁에서 자신감이 생길 때는 조인 형태의 연방을 주장해온 특징을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둘째, ‘낮은 단계 연방제’에서 민족통일기구를 구성하자고 하는 것은 연방정부를 만들자는 의도로 보인다. 1961년과 1991년 주장을 종합해 보면, 남북 정부가 정치·군사·외교권을 보유하되, 연방정부가 경제·문화·외교문제 등에 관해 조절한다는 구도로 해석된다. 북한은 연방정부의 조절기능을 이용, 남한에 대한 내정간섭을 마음대로 하려 할 것이며, 연방통일국가의 국호·국기 등 국가상징물도 만들자고 나올 가능성이 없지 않다. 이 경우 대한민국의 국체에 영향을 줄 개연성이 있는 것이다.

셋째, 북한이 연방제와 관련, 정치적·물리적 장벽 제거를 주장하고 나온 것은 과거 주장해온 연방제 선결조건의 재판에 불과하다. 그들은 80년 이후 선결조건으로서 국보법 폐지, 공산당 자유활동 보장, 미군 철수, 심지어 콘크리트 장벽(휴전선 대전차 장애물) 제거 등을 요구해 왔다. 북한은 연방제를 남북합작으로 규정해 왔으며, 합작이란 남한이 반공태세를 철폐한 조건에서 북과 힘을 합쳐 사업을 하는 것을 의미하는 것으로서, 바로 여기에 정부가 평화공존의 틀로서 생각하는 ‘연합제’와 개념상 차이가 있음을 직시해야 한다.

역사적으로 볼 때, 물과 기름처럼 사상과 제도가 다른 두 국가간에 연방이 성립된 일이 없으며, 두 국가로 구성된 연합제는 힘의 논리에 의해 일정 시점에 가서 열세한 측이 우세한 측에 의해 흡수통일되고 말았다. 특히 연합(연방)의 출발점이 평화정착에 있다고 할 때, 한반도 평화장치가 마련되지 않은 상황에서 연합 또는 연방을 논의·합의하는 것은 정책의 우선순위상 적절치 못하다. 민족통일을 위해서는 남북간 상부권력구조를 인위적·기계적으로 조합시키는 것보다, 기능적 접근에 의해 민족공동체를 점진적으로 회복해가는 하부구조 통합이 선행되어야 함을 잊어서는 안 된다.

송영대/전 통일부차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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