金基天

돌이켜보면 수상쩍은 구석이 한두 군데가 아니었다. 1999년 대우그룹이 무너진 이후 증권시장에선 ‘다음에는 현대그룹’이라는 루머가 나돌기 시작했다. 그러나 이에 대한 정부의 반응은 대우 때와 판이하게 달랐다.

당시 재경부와 금감위 고위 간부들은 “현대와 대우는 다르다”며 이구동성으로 현대를 비호했다. 대우와는 달리 현대는 ‘캐시 카우(cash cow)’, 즉 돈을 벌어들이는 기업이 있기 때문에 문제가 없다는 것이 정부 관리들의 주장이었다.

2000년 3월 ‘왕자의 난’ 이후에도 정부의 ‘현대 짝사랑’은 변함없었다. 한 경제부처 장관은 “현대 스스로 적절히 변화하고 있다”고 말하기도 했다. 형제 간 후계 다툼으로 인해 계열분리 작업이 예정보다 앞당겨지면 현대 문제는 저절로 풀린다는 식이었다.

정부는 또 2001년 일시적으로 유동성 위기를 겪고 있지만 회생 가능성이 있는 기업을 지원한다는 명분으로 회사채 신속인수제도를 도입해 현대그룹을 아낌없이 지원했다. 전체 지원금 3조원의 80%를 현대 계열사가 차지했을 정도로 이는 사실상 현대를 위한 제도였다.

국내외 언론들로부터 ‘관치(官治)경제’ ‘시장경제 원리에 반(反)하는 조치’라는 비판이 쏟아졌지만 정부는 꿈쩍도 하지 않았다. 현대에 대한 특혜가 문제될 때마다 정부는 “현대가 무너지면 경제 전반에 엄청난 충격이 예상된다”며 이를 합리화했다.

그러나 지금 현대 수수께끼의 숨은 진실이 드러나고 있다. 국민들은 ‘대통령 비서실장의 전화 지시’라는 증언에 “역시 그렇군…”이라는 허탈감과 분노를 느끼고 있다. 국책은행 자금이라고 정부가 제멋대로 인심을 써도 된다는 말인가.

결국 정부가 현대를 감싸고 돌면서 내세웠던 경제논리는 표면적인 구실에 불과했고, 진정한 이유는 다른 데 있었다. 대북(對北)관계를 지렛대로 한 ‘야합(野合)’에 대한 항간의 추측은 정곡을 찌른 것이었다.

시장경제 원리에 따라 부실기업 상시퇴출 제도를 시행한다면서도 현대 계열사에 대해서는 정부가 안면몰수하고 구제조치에 나선 데는 다 그렇고 그런 속사정이 있었던 것이다.

현대에 대한 산업은행의 대책 없는 ‘퍼주기’는 ‘정치논리’가 만들어냈던 과거의 관치금융과 조금도 다를 바 없다. 아니 관치금융은 최소한 경제적 용도를 전제로 했다는 점에서 남북 ‘뒷거래’용 의혹을 받고 있는 산은(産銀) 대출은 훨씬 더 악질적이다.

경제관료들은 억울함을 하소연할지도 모르겠다. 당시 재경부 장관과 금감위원장이 구조조정 문제로 현대측과 갈등을 빚은 끝에 결국 물러나야 했다는 소문도 있다. 대우에 이어 ‘현대 붕괴’가 몰고 올 충격에 대한 공포심 역시 터무니없는 과장이었다고 일축하기는 어렵다.

그렇다고 정권과 현대의 밀월·공생관계로부터 당시 경제팀이 과연 초연할 수 있었을까. 어림 반푼어치도 없는 소리다. 4000억원 대출이 드러낸 정경유착의 ‘암류(暗流)’가 밑바닥에 흐르고 있는 한 그 어떤 변명과 논리로 포장하더라도 현대에 대한 특혜와 기업 구조조정 원칙의 훼손을 합리화·정당화할 수는 없다.

중복 계산된 부분이 있지만 1999년 이후 현대그룹에 대한 금융기관의 직·간접 지원규모는 30조원을 넘는다. 그런데도 다른 기업들의 경우와 달리 정부는 지금까지 현대그룹 오너들에게 공적자금 투입 유발에 대한 책임을 묻지 않고 있다. 경영일선에서 물러났던 정몽헌 전(前) 회장은 최근 권토중래(捲土重來)를 노리고 있다.

정부의 이 노골적인 이중잣대를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정부 스스로 이 모순을 해결하지 못한다면 우리 경제의 미래는 어두울 수밖에 없다. 정경유착과 관치야말로 IMF 위기를 초래했던 가장 큰 원인이 아닌가.

나라의 체통과 자존심뿐만 아니라 경제를 바로 세우기 위해서라도 정부는 이제 결단을 내려야 한다. 4000억원의 흑막(黑幕)을 숨김없이 밝히고 그 책임을 묻는 데서부터 시작해야 한다.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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