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이름도 유명한 ‘평화의 댐(사진)’은 파로호 꼭대기를 점령하고 있다. 암울했던 지난 80년대, 정치적인 논리로 급조됐던 평화의 댐은 북한의 금강산댐 수공작전에 ‘63빌딩’이 물에 잠긴다는 공포분위기 속에 탄생했다. 아니, 63빌딩이? 그 때 발현된 애국심은 IMF 초기 애기 돌반지까지 녹여내던 애국심은 저리 가라였다. 이러구러한 덕에 파로호는 국내 최고, 최장이라는 해산터널이 뚫리면서 문명세계와 연결됐다. 오로지 배에만 의지해 읍내를 오가던 파로호 주변 사람들은 460번도로 덕에 읍내 마실이 훨씬 쉬워졌다. 계곡 따라 시멘트 포장길이 난 덕에 비수구미 심금산씨네가 들여왔던 다마스 자동차는 연전 여름 길이 붕괴되면서 비수구미 좁은 하늘 아래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댐에서 300m만 더 들어가면 민통선이다. ‘환영합니다’라는 큰 간판 아래 철책이 있고 군인들이 자리를 지킨다. 거기에서 길은 끝. 대신 주변에 꾸며놓은 비목공원이 쉼터를 제공한다. “초연이 쓸고간∼”하는 노래 비목은 이곳에서 뒹구는 무명용사 비목(비목·비석이 아니라 비목이다)에서 모티브를 얻었다.

전쟁, 그리고 어처구니 없는 댐 쌓기, 개발 수혜에서 벗어났던 오지마을…. 평화의 댐 위 코스모스들이 기막힌 현대사 위로 흩날린다.

/글·사진=박종인기자 seno@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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