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부터 정확히 40년 전, 1961년 8월 13일 동독은 270만명에 이르고 있던 서독행 탈주자를 막기 위해 서베를린을 둘러싼 경계선 155㎞에 콘크리트 장벽을 쌓고 감시탑 293개, 벙커 57개, 각종 감지시설 등을 설치했다.

빌리 브란트 당시 서베를린 시장은 “장벽 설치로 동독은 거대한 수용소로 변할 것”이라는 유명한 말을 남겼다. 1989년 11월 9일 베를린장벽이 붕괴될 때까지 5000여명이 땅굴, 열기구 등 온갖 수단과 방법을 동원해 자유의 땅을 찾았다.

▶우리 역사에서 집단이주의 기록은 드물다. 조선시대 세종 때 김종서의 육진 개척으로 두만강까지 영토가 확장되는 바람에 함경도 지방으로의 대거 이주가 있기는 했다. 또 우리 영토에서 일어난 일은 아니지만 1937년 스탈린의 까레이스키(고려인) 강제이주방침에 따라 원동지역에 살던 한인(韓人) 17만여명이 우즈베키스탄과 카자흐스탄으로 실려간 사건이야말로 ‘강제이주’와 관련해서 우리 민족사의 가장 대표적인 비극이다.

▶북한의 ‘신의주 특구’지정 발표 이후 세계 언론들의 주목을 끄는 각종 뉴스가 터져나오고 있다. 그 중 하나가 현지 주민 20여만명을 다른 지역으로 소개(疏開)한다는 것이다. 공습경보 때나 하는 것으로 알았던 ‘소개’가 경제개발을 위해서도 가능하다는 것은 이번에 처음 목격하는 일이다. 북한에 거주 이전의 자유가 없다는 거야 이미 아는 바지만, 그래도 “설마 이 정도까지…”라는 의문이 드는 것은 어쩔 수 없다.

▶장밋빛으로 가득찬 ‘신의주 특구’ 구상이 ‘신의주 장벽’ 문제로 일단 멈칫하고 있다. 양빈(楊斌) 초대 신의주 특구장관은 1일 “외국인의 북한 내지(內地) 출입을 막기 위한 울타리 공사를 마무리하는 데 6개월이 필요하다”며 “무비자 입국은 그 후에 가능하다”고 말했다. 울타리인지 장벽인지의 설치 목적이 외국인이 북한 내지를 들락거리는 것을 막기 위해서란다. 혹시 그 반대가 아닐까.

▶‘신의주 특구’를 고난의 행군에서 벗어나려는 북한식 자구책으로 보는 우리 정부 같은 긍정적 시각과 소련식 붕괴로 가는 첫걸음으로 보는 아시안 월스트리트 저널 같은 부정적 시각이 엇갈리고 있다. 두 시각 중 어느 쪽이 옳은 지는 시간이 가려주겠지만, 그에 앞서 우리 국민을 상대로 여론조사를 해본다면 어떤 결과가 나올지 매우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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