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 정부의 대북 비밀지원 의혹이 확산되자 민주당 한화갑 대표는 27일 “독일은 통일을 돈 주고 산 것인데 이런 사실을 말하는 사람이 없다”고 불만을 토로했다. 설혹 비밀지원이 사실이더라도 독일의 경우에 비추어 그렇게 비난할 일이 아니라는 뜻인 듯한데, 여당대표의 인식이 이 정도라면 보통 사태가 아니다.

한 대표는 북한정권에 몰래 거액의 뒷돈을 갖다 바치는 것이 정말로 통일을 위한 것이라고 생각하는지, 의혹을 밝혀내려는 시도 자체를 ‘민족적 양심을 벗어난 작태’라고 비난하기도 했다. 한 대표는 아무 데나 독일 사례를 갖다대면서 사태의 본질을 호도하려고 할 것이 아니라, 역사적 교훈을 제대로 알려는 노력부터 해야 할 것 같다.

동서독기본조약이 체결된 1972년부터 통일된 1990년까지 18년간 서독의 동독지원 총액은 정부와 민간부문을 합쳐 약 1044억마르크(약 61조원)에 달한다. 이 중 서독주민이 동독주민에게 제공한 현금과 선물이 37조원으로 절반을 넘는다. 정부차원에서는 동독고속도로 통행료, 동서독 교역지원비, 정치범과 이산가족 석방 및 이주비, 동독주민의 서독방문 환영금 등이 주요 항목이다.

서독의 동독 지원은 철저한 상호주의 정신에 따라 동독 내 인권개선이나 동서독 긴장완화·교류촉진과 연계돼 있었고, 이런 원칙준수가 통일에 기여한 것이다. 지원방식과 규모·목적이 투명했고, 불가피한 경우에도 여야 간 합의를 선행시켰다. 만약 서독 브란트 총리가 동독정권에 뒷돈을 주고 동·서독 정상회담을 성사시켰다면 그날로 그의 정치생명과 동방정책은 풍비박산이 났을 것이다.

한 대표의 발언이 만에 하나 현 집권층의 일반적 인식경향을 드러낸 것이라면 앞으로도 북한과 이런 식의 거래를 되풀이할 수 있다는 것인지 묻지 않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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