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북간에 적대적 관계는 이제 청산된 것인가? 미루지 말고 한번 떠올려야 할 질문인데, 외무부장관을 지내기도 했던 한승주(한승주) 고려대 정외과 교수는 그 문제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보자.

한 교수는 일단 논점을 좁히고 시작한다. 북한의 협조적 태도가 얼마나 오래 지속될 것인가? “북한은 그 체제 속성상 정책의 기본 방향을 비교적 쉽게 바꿀 수 있다. 그때그때 필요한 명분과 이유로 남한을 협력의 대상으로도, 적대적 대결의 대상으로도 만들 수 있다. ”

바뀌려면 쉽게 바뀔 수도 있다는 말이다. 그래서 바뀔까? 먼저 개방·교류의 과정을 북한이 생각하는 대로 통제하지 못하는 수가 있다. 그럼 남한과의 협력관계를 지속할 수 없을 것이라고 한 교수는 판단한다. 나아가 ‘지금의 가시적 협력관계’가 중단될 수 있는 또 하나의 가능성을 제시한다.

“애초부터 오늘의 관계를 한시적인 것으로 생각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북한이 남한을 발판으로 외부로부터 충분한 경제지원을 받고 또 국제적인 관계확대에 어느 정도 성과를 올린 다음 새로운 남북관계를 모색할지도 모른다. ”

‘남과 북 그리고 세계’는 냉전이 끝난 80년대 말부터 2000년 6월 남북정상회담의 시점까지 한 교수가 썼던 칼럼들을 주제별로 정리한 책이다. 그가 ‘북한의 협조적 태도가 얼마나 오래 지속될 것인가’를 묻는 것은 칼럼들의 총론 격인 머리말을 통해서다. 책에 실린 칼럼의 내용들이 보여주듯, 10여년을 대북·대외 관계의 본질에 대해 천착해온 끝에 저자는 그런 질문을 던지고 있는 것이다.

또 한번의 냉전 가능성을 강조하자는 게 아니라 신중하자는 얘기일 것이다. 한 교수는 “남북한 관계의 현주소를 냉철하고 정확하게 파악할 필요가 있다, 감상적으로 남과 북이 갑자기 화합하여 통일을 이룰 것으로 기대하는 것은 비현실적인 일이다”라고 말한다.

한 교수는 칼럼들을 크게 두 테마로 묶었다. ‘남과 북:대결에서 정상회담까지’란 큰 제목 아래 모아놓은 칼럼들은 ‘북한 핵문제와 한반도의 위기’ ‘포용정책과 남북정상회담’ 등의 주제를 다루고 있다. 2부 ‘세계 속의 한국’을 통해서는 ‘한반도와 지역 정치’ ‘세계질서의 재개편’ 등의 주제를 다룬 칼럼들을 선보인다.

칼럼들을 정리하면서 한 교수는 자신이 어떤 메시지를 전달하려고 그 글들을 썼는지를 자문해 본 모양이다. 그리고는 “통일문제에 있어 감정보다는 실용성과 현실에 근거한 접근을 취해야 한다, 남북관계에 있어 북한의 선의나 신의 또는 민족애에 기대를 걸기보다는 이해관계를 기반으로 정책을 수립하고 추진해야 한다”는 믿음을 피력한다. 김경원(김경원) 사회과학원장은 “리얼리티를 있는 그대로 보면서도 선(선)을 지향하는 데서 오는 조용한 긴장감이 흐르고 있다”고 한 교수의 칼럼들을 평가했다.

/이지형기자 jihyung@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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