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월 2일에 끝난 미·북간 뉴욕 회담은 고위급회담을 위한 길었던 준비회담에 일단 마침표를 찍었다. 작년 9월에 미·북간 베를린 합의가 있은 직후 ‘페리 보고서’가 제출된 뒤부터 양국은 대량살상 무기와 관계개선 문제를 일괄타결하기 위한 고위급회담을 모색해 왔다. 북한의 김계관 외무성 부상과 미국의 찰스 카트먼 평화회담 대사는 그 해 11월부터 여섯 차례 만에 ‘만남’ 자체에 합의했다. 10월 9일부터 워싱턴에서 열릴 미·북 고위급회담은 그만큼 의미가 큰 회담이다.

사실 미·북관계 개선을 위해서는 걸림돌이 되는 많은 문제가 해결되어야 한다. 현재 미국은 북한의 중·장거리 미사일 개발 및 수출 중지와 함께 KEDO 사업 진행에 따른 핵투명성 강화를 요구하고 있다.

이에 대해 북한은 미국의 테러지원국 지정 해제 및 이를 통한 대북 경제제재 대폭 해제를 요구하고 있다. 또 양국간에는 6·25전쟁 이후의 적대 상태를 평화 상태로 전환하는 조치도 있어야 한다. 이와 관련해서 북한은 과거부터 줄곧 주장해 온 주한미군 철수와 미·북평화협정 체결 요구를 아직 완전히 포기하지 않고 있다.

이처럼 미·북 수교에까지 이르기 위해서는 많은 현안이 해결되어야 한다. 그리고 이 문제들은 하나같이 풀기 어려운 구조적인 문제들이다.

북한에 미사일 개발 중지는 기존 안보전략의 대폭 수정과 함께 대외 군사판매의 이익 포기도 감수해야 하는 문제이며, 핵투명성 강화도 KEDO 사업이 지연되는 가운데 핵주권을 포기한다는 점에서 쉽지 않은 사안이다.

미국으로서도 테러지원국 지정 해제와 미·북평화협정 등은 세계전략과 한·미관계에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쉽게 동의하기 어렵다.

그렇지만 미·북간에 그동안 여섯 차례나 준비회담이 열렸다는 사실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양국은 여러 현안에 대해 상당한 정도의 의견 접근을 이루었고, 그 결과로 이번 고위급회담이 열린다고 보아야 하는 것이다. 양국은 장거리 미사일의 시험발사 중단과 ‘테러 지원국’ 해제에 이미 합의했을 가능성이 크고, KEDO 사업과 핵투명성 강화에도 원칙적인 합의가 이루어졌을 것이다.

이 점에서 이번 고위급회담에서는 이 같은 ‘물밑 합의’를 표면화하면서 아직 미타협된 문제들의 담판을 시도하게 될 것으로 본다.

조명록 국방위 제1부위원장의 방미는 이 점에서 주목된다. 그는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최측근일 뿐만 아니라 북한 군부의 실력자이다. 그의 방미에는 김정일의 특사로서의 의미와 함께 북한 군부의 의사가 실려 있다고 보아야 한다.

그렇지만 이는 관계개선에 응한다는 단순한 표시라기보다는 관계개선 과정에서 의사를 관철시킨다는 의지의 표현으로서 보아야 할 것이다. 특히 아직 미결된 문제가 북한 군부로서 매우 민감한 주한미군 및 미·북평화협정 문제이기 때문에 더욱 그렇다. 조명록은 협상 전문가가 아니므로 단호한 의지만 보이고, 협상은 강석주 외무성 제1부상 등이 하게 될 가능성도 있다.

조명록의 방미는 남북관계 개선에 이어 미·북관계 개선까지 이룩함으로써 이미 시작된 북한의 변화를 공고히 할 계기라는 점에서 매우 중요하다. 물론 미·북간 현안 중 구조적으로 타결이 쉽지 않은 사안이 있으므로 한번에 회담이 종결되고 미·북 수교가 이루어지기는 힘들겠지만, 북한의 미사일 개발 중단만도 한반도 냉전구조 해체를 위해 중대한 진전이 될 수 있다.

그러나 여기에 북한이 그동안 생각해 온 한반도 군사문제의 해결 방식이 숨어 있다는 점을 상기하자. 주한미군 철수 유보와 미·북간 잠정협정, 그리고 북·미·남 3자간 군사기구의 구성 등이 한 패키지라면 무리한 상상일까? 구체적 방안에 대한 재검토와 더욱 긴밀한 한·미협조가 필요한 시점이다.

서 주 석/한국국방연구원 북한군사연구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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