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을 움직이려면 김정일(김정일) 국방위원장과 직접 대화하시오. ”

남북정상회담 이후 김대중(김대중) 대통령은 일본측과 만나는 자리에서 이런 조언을 되풀이해왔다. 그 충고를 받아들여 모리 요시로(삼희랑) 일본 총리가 대북한 ‘친서(친서)외교’를 벌였다가 도리어 구설수에 올랐다. 김 위원장에게 비밀리에 친서를 보낸 사실이 뒤늦게 드러나 정치권의 비판을 사고 있는 것.

친서는 지난 8월 하순 ‘한국계 밀사’를 통해 북한에 전달된 것으로 알려졌다. 일·북한 관계의 진전을 바라는 내용. “김 위원장과의 정상회담을 희망한다”는 구절도 있다고 한다. 밀사는 ‘북한 노동당 간부와 친한 한국계 저널리스트’라는 게 정설. 한 잡지는 재미언론인 문명자(문명자)씨의 이름을 거명하기도 했다.

모리 총리가 대북친서를 보낸 사실이 한 신문 특종보도로 알려진 후 정부·여당 안에선 연일 비판이 쏟아지고 있다. 정식 외교루트를 무시한 ‘위험한 구애편지’라는 것. 노나카(야중광무) 자민당 간사장은 “한발 삐끗하면 만회불능 상태가 될 수 있다”고 경고했다. 아사히신문은, 외무성이 “의욕을 보일수록 상대방에 카드가 노출된다”며 곤혹스러워 한다는 소식을 전했다.

요컨대 대북한 협상전선에 차질을 빚을 수 있다는 게 비판론의 요지다. 물론 모리 총리로선 지지부진한 일·북 관계를 단숨에 뚫겠다는 생각이었던 듯하다. 하지만 대북한 관계에서 중요한 것은 ‘조율된 팀플레이’라고 비판론자들은 지적한다. 아무리 총리라도 돌출된 행동으로 협상력을 분산시켜선 안된다는 것이다. /동경=박정훈기자jh-park@chosun.c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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