래리 닉쉬
/미국 의회조사국(CRS) 아시아 전문가

고이즈미 준이치로(小泉純一郞) 일본 총리는 북한과의 정상회담에서 상당한 결과를 얻었다. 북한은 긍정적으로 보이는 몇가지 선언들을 했다. 그러나 그같은 다짐이 진지하게 나온 것인지 아니면 해묵은 조작 전술에 불과한지는 앞으로 그들이 실제로 어떻게 행동하는지를 봐야만 알 수 있다는 것을 우리의 오랜 대북 경험은 말해준다. 김정일은 부시 행정부와 대화하겠다는 강력한 의사를 표시했고, 그것을 부시 대통령에게 전달해 달라고 고이즈미 총리에게 부탁했다.

북한이 진지한지를 알 수 있는 하나의 시험은, 그들이 과연 미국 국무부의 제임스 켈리 동아시아태평양 담당 차관보에게 방북을 위한 특정한 날짜를 제시할 것이냐 하는 점이다. 지난 6월에 북한은 부시 행정부에 대해 켈리 차관보의 방북 희망 날짜를 알려달라고 말했지만, 막상 미국이 ‘7월10일’에 가겠다고 제시하자 아무런 대응도 하지 않았다.

북한은 또 핵 문제와 관련한 각종 국제적 합의들을 준수하겠다고 밝혔다. 여기엔 핵확산금지조약, 북한과 국제원자력기구(IAEA)가 1992년에 체결한 핵안전조치협정, 미국과 북한이 1994년에 맺은 제네바 합의 등이 포함될 것이다. 북한의 이 다짐이 진지한 것이냐 하는 테스트는 간단하다. 북한은 이 모든 합의에 명시된 대로 IAEA에 대한 의무를 당장 준수하고 이행해야 한다.
김정일은 또 일본인 납치에 대해 사과하고, 앞으로 일본에 대한 도발을 중단하겠다고 밝혔다. 북한이 앞으로 정말 일본 바다에 간첩선을 보내는 것을 중지할지는 두고 봐야 한다.

그런데 일본 총리의 상당한 성취로 가장 이득을 보는 쪽은 미국일 것 같다. 미사일 실험발사 유예의 연장은 북한으로 하여금 미 본토의 목표에 도달하도록 개발중인 대포동 미사일의 실험발사를 못하게 할 것이다. 미사일 발사 유예로 일본이 볼 이득은 적다. 북한은 이미 일본 전역을 사정권에 넣는 노동 미사일을 완전히 개발했고, 그것을 파키스탄과 이란의 협력 하에 수차례 실험했다.

일·북 수교 과정에서 일본이 줄 돈을 ‘보상’이나 ‘배상’이 아닌 ‘지원’으로 하기로 한 것은 부시 행정부에게 향후 일본의 원조 계획에 대해 좀 더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여지를 줄 것이다. 부시 행정부는 지원액의 규모나 지원 사업의 형태, 지원액의 사용처에 대한 관찰, 그같은 지원의 군사적 전용(轉用) 금지 등에 관해 일본 정부와 긴밀히 협의하기를 원할 것이다. 미·일 협의 대상에는 일본의 그같은 지원을, 가령 미사일 문제같은 미·북 사이의 협상 의제들과 연관시킬 것이냐의 문제도 포함될 수 있다.

부시 행정부 내에서는 북한과 협상을 할 것이냐 말 것이냐의 문제로 토론이 계속되고 있다. 고이즈미의 방북 결과는 아마도 부시 행정부내 대북 협상주의자들의 입지를 강화시켜줄 것이고, 한국과 일본에서 미·북 대화를 희망하는 여론도 더 부추기게 될 것이다. 그러나 미국으로서는 북한과의 대화를 시작할 수 있는 시간이 10월과 11월 전반 정도로 좁아질 것이다. 아마도 11월 후반이 되면 이라크 전쟁 준비가 부시 행정부의 외교업무를 압도할 것이기 때문이다.

고이즈미의 방북 결과는 북한이 긍정적으로 변화하고 있다는 김대중 대통령의 주장을 포함해, 그의 햇볕정책의 타당성 주장에 더욱 신뢰를 불어넣게 될 것이다. 이는 북한이 최근의 합의대로 남북한간 철도·도로 연결 약속을 차질없이 이행한다면 더욱 강화될 것이다. 그러나 일본이 북한의 일본인 납치 문제에 중점을 두게 되면, 김 대통령의 후임자는 지금까지 한국 정부가 문제삼지 않았던 480여명의 남한 납북자 문제를 북한에 제기하지 않을 수 없도록 압력을 증대시킬 것이다.

북한이 피랍 일본인들에 대해 제공한 정보는 두 가지 미해결 문제를 제기하고 있다. 첫째 북한이 사망했다고 밝힌 피랍 희생자들의 유해를 확인하고 이를 일본으로 송환하는 문제다. 둘째 북한이 생존해 있다고 밝힌 피랍자 5명의 처리 문제다. 북한은 만일 생존자들이 원하면 일본으로 돌아갈 수 있다고 말하지만, 이들이 북한에 의해 감금된 상태에서 자유 의지로 귀국을 원한다고 말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우리는 장기간 전체주의 체제의 통제 아래 생활한 사람들이 세뇌됐을 가능성을 익히 잘 알고 있다.
고이즈미 총리는 북한에서 10여시간만에 기적을 만들어낼 수 없었다. 그러나 그는 향후 대북 협상에서 새로운 가능성들을 보여줄 만큼 충분히 성취했다. 그가 북한으로부터 확보한 몇가지 약속들은 북한의 미래 행동을 측정할 수 있는 잣대가 될 것이다. 그의 방북은 비록 제한적이긴 하지만 성공적이었던 것으로 생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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