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이 핵무기를 보유하고 있다”는 도널드 럼스펠드 미국 국방장관의 지난 16일 발언은 여러가지 점에서 의미심장하다.

이 발언은 북한 핵문제에 대한 미국 외교·안보 분야의 최고 정책결정자의 의지가 얼마나 단호하고 강경한지를 드러냈을 뿐만 아니라, 일·북 정상회담과 최근 남북관계 진전 등 한반도 주변에서 진행되는 대화무드에도 불구하고 미국의 관심은 초지일관 북한의 대량살상무기(WMD) 쪽에 맞춰져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한마디로 미국이 보는 북한문제의 핵심은 대량살상무기와 북한의 위협 제거인 것이고, 이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 상태에서 추진되는 북한과의 화해·협력은 큰 의미가 없다는 입장인 것이다. 문제는 이같은 미국의 입장이 한국과 일본 정부의 대북 접근과는 심각한 괴리를 보이고 있다는 점이다.

남북 및 일·북관계 진전으로 한반도 주변은 요즘 평화분위기에 젖어있다. 그런데 미국 국방책임자인 럼스펠드가 ‘북한 핵 보유’ 발언으로 이런 무드에 일침을 놓고 나선 것이다. 더욱이 이 발언은 일·북 정상회담이 열리고 있는 것과 거의 같은 시각에 터져나왔다는 점에서 주목된다.

발언 파문이 확산되자 토머스 허바드 주한미국대사가 “새로운 사실을 말한 것이 아니라, 그간 북한이 핵무기 2~3개를 개발할 수 있는 물질을 갖고 있을 것이라는 정보부처들의 평가에 따른 것”이라고 해명했지만, 이를 그저 지나가는 말로 치부할 수는 없다.

전후사정으로 미뤄볼 때 럼스펠드의 발언은 상당한 목적을 갖고 있는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일·북 정상은 엊그제 평양회담 후 발표한 공동선언에서 “한반도 핵문제의 포괄적인 해결을 위해 모든 관련 국제합의를 준수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이같은 북한의 입장표명은 물론 ‘말(言)’ 이상의 것이 아니지만 그 실천의지를 확인해볼 단서는 나온 셈이다.

따라서 북한 핵문제의 시급성 등을 감안할 때 미국정부는 핵·미사일·북한 위협 등을 의제로 하는 본격적인 대북(對北) 담판에 나설 단계에 이르렀다고 할 수 있다. 이를 위해서는 한·미·일 3국이 북한 관련 정보들을 모두 공유하면서 효과적인 대북공조 방안을 모색하는 것이 선행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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