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인 납치는 북한 특수기관들 사이의 망동주의와 영웅주의의 산물’이라는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시인으로 특징지워진 이번 북·일 정상회담은 우리를 향해 새로운 차원의 질문을 던지고 있다. 그것은 북·일간 정식 외교관계가 수립되고 양측 사이의 교류·협력이 본격화되는 상황에 대처할 전략적 준비가 돼 있는가 하는 물음이다. 고이즈미 총리와 김정일 국방위원장간의 회담을 계기로 북·일 수교가 현실의 문제로 성큼 다가왔기 때문이다.

북·일 합의의 골자는 북한이 일본인 납치를 인정·사과하고, 이에 따라 양측은 수교 교섭을 재개하며, 또 일본은 대북 경제협력을 제공하는 것이다. 아직 수교까지는 많은 과정이 남아 있고, ‘합의 따로 실천 따로’식(式)의 과거 북한 행태를 볼 때 낙관하긴 이르지만, 이에 대한 우리의 대비를 마냥 늦출 수 없게 된 것만은 분명하다.

일본의 부상은 한반도문제의 국제적 성격이 더욱 부각되는 것을 의미하는 만큼 한·미·일 3국 공조체제를 강화하는 노력이 더 한층 절실해졌다. 일본의 대북 경협 제공문제를 포함한 북·일 합의 이행은 한반도 평화와 안정이라는 원칙 아래 진행되어야 하며, 북한의 ‘구두 약속’만 있는 핵·미사일 관련 합의는 미·북 대화를 통해 구체화될 필요가 있다. 어떤 경우에도 북한을 상대로 3국이 각개약진하는 듯한 상황은 바람직하지 않다.

그러나 대화 무드라고 해서 북한에 대해 따지고 짚어야 할 사안들을 소홀히 넘길 수는 없다. 김정일 위원장의 입을 통해 확인된 일본인 납치문제는 ‘통 큰 고백’ 정도로 가볍게 치부할 사안이 아니다. 이는 오늘의 국제사회에서 상상하기도 힘든 국가기관에 의한 제3국 민간인 납치라는 범죄 행위이며, 더욱이 그 목적이 ‘한국 침투 교육용’이라고 밝힌 만큼 실체가 반드시 규명되고 따져져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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