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 정부는 간첩을 못 잡는 것인가, 안 잡는 것인가. 그나마 적발된 간첩사건마저 일절 공개하지 않고 쉬쉬해 온 것은 또 무슨 이유인가. 북한정권을 자극하지 않으려는 의도 때문은 아닌가. 국가안보에 직접적인 위해를 가할 수 있는 간첩행위를 마음놓고 할 수 있는 분위기를 정부 스스로 만들어주고 있는 것은 아닌지 심히 우려되는 사태다.

현 정부 들어 지금까지 검거된 간첩은 모두 34명에 불과하다(한나라당 강창성 의원 공개 자료). 1년 평균 6~7명꼴이며, 그나마 갈수록 줄어들어 작년에는 5명, 올해엔 1명뿐이다. 김영삼 정부 때는 모두 73명이었다.

이것이 북한의 간첩활동 자체가 줄어든 결과라면 다행이지만, 그렇게 판단할 만한 근거는 어디에도 없다. 과거 서독이 동독과의 화해정책을 펼 때 동독이 오히려 간첩 숫자를 대폭 늘렸고, 브란트 서독 총리의 비서까지 간첩으로 드러난 사실은 역사적 교훈이다. 남북간 왕래가 잦아질수록 간첩활동은 그만큼 용이해질 수밖에 없다.

현 정부 들어 수사당국의 간첩검거 태세가 현저히 둔화되고, 사회적인 경각심 역시 눈에 띄게 느슨해진 것은 누구도 부인하기 어렵다. 간첩을 붙잡고도 발표를 하지 않으니 일반 국민들은 “이제 간첩이 없어진 모양”이라고 생각할 수밖에 없고, 간첩신고 전화인 ‘113’은 무용지물이 돼 버렸다.

게다가 북한간첩 검거가 제1의 임무인 우리 쪽 ‘스파이 최고책임자’가 북한 김정일과 여봐란 듯 귀엣말을 나누는 장면이 만천하에 공개됐을 정도니 누가 간첩 잡는 데 앞장서겠는가.

지금이라도 정부는 북한이 어떻게 대남 간첩활동을 하고 있는지, 수사기밀이 아닌 한 상세히 그 실상을 밝히고 대비책을 강화해야 한다. 북한의 눈치를 보느라고 감히(?) “간첩을 잡았다”는 발표조차 못한다면 현 정부가 북한의 간첩활동을 방치하고 있다는 비난을 면키 어려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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